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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K”, 시청자는 무엇에 열광하는가

자기 재능을 통한 ‘성공’과 그 과정의 자발적 자기 상품화


<슈퍼스타 K> 때문에 지상파 예능 제작진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케이블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웬만한 지상파 방송사 예능 프로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스타 K>가 마침내 ‘시즌 2’에서 막대한 물량 공세를 투입할 수 있었던 것도 시청률 때문이었다.

보통 1%도 넘기 힘든 케이블 TV의 시청률을 고려할 때 3-4%의 시청률을 기록한다면 대박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슈퍼스타 K>는 12%를 넘기도 했다. 지상파 프로에서 대규모 예산과 화려한 캐스팅을 해놓고도 5%이하의 시청률을 보이는 프로가 빈번한 현실에서 <슈퍼스타 K>의 인기는 분명 사건이다. 이는 <슈퍼스타 K> 콘텐츠의 내용을 분석하는데 여념이 없게 한다.

일단 <슈퍼스타 K>는 <1박2일>, <무한도전>, <남자의 자격>과 같은 전문예능인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반인 참여 중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귀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문예능인이 주는 생생한 우연의 효과보다도 실제 감각을 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상호참여적인 프로의 이면에는 여전히 상품화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슈퍼스타 K>의 놀라운 시청률도 단순한 원리에 기인한다. <슈퍼스타 K>가 벤치마킹한 미국의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시즌 9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가 바로 이 프로그램의 참여자이거나 잠재적 참여자 혹은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슈퍼스타 K> 시즌 2의 경우, 오디션 지원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백만 명은 고스란히 <슈퍼스타 K>의 시청자가 된다.

이런 방식은 회를 거듭하면서 참여자를 늘리고, 그 참여자는 다시 시청자가 된다. 참여자 혹은 잠재적 참여자와 연관이 되어 있는 지인들도 참여자가 된다. 왜 이들은 참여자가 기꺼이 되며, 참여자를 잘 아는 이들은 시청자가 되는 것일까?

이 프로가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내적 동기는 바로 자기 재능을 통한 ‘성공’과 그 과정의 자발적 자기 상품화이다. 이 때문에 ‘보는 사람’이나 ‘참여하는 사람’이나 모두 시청률의 상승의 동반 구성체가 된다. <슈퍼스타 K>의 기획 의도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을 보면, 그동안 기획사와 음악계의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배제되었던 실력 있는 이들의 데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슈퍼스타 K>는 일반인들에게 ‘정보비대칭’의 잘못된 구조를 벗어나 가수의 꿈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비대칭’이란 진정한 실력자들이 외모나 연줄을 따지기 때문에 묻히고 배제되는 것을 말한다. 더욱 달콤한 것은 물질적인 보상이다.

당장 우승하면 2억 원의 상금과 함께 부상으로 고급 자동차가 주어진다. 여기에 이미 경쟁과정에서 유명해져 연예인의 반열에 오르며, 음반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기 되므로 명실상부하게 부와 명예를 얻고 자기실현의 성공 기회도 잡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재능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유명해지는데 쓰인다. 요즘 유행하는 ‘재능기부’와는 관계없이 ‘재능성공’만 부추기는 프로다.

‘재능기부’(Talents Donation)는 자신의 재능이나 기술, 정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재능 기부는 프로보노(pro bono)에서 비롯되었다. ‘공익을 위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자신의 전문적인 재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프로보노는 사회지도층이나 전문가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것이지만 현재에는 다양한 일상의 영역으로 내려가 확장 되고 있다.

예컨대, 자신이 음식솜씨가 좋은 주부는 그 솜씨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준다. 배관을 잘 고치는 사람은 수해현장에서 막힌 상하수도를 뚫는다. 음악가는 자신의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거나 음반의 수익금을 기부한다. 금전적인 기부에서 각자 무형의 능력을 기부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슈퍼스타K>는 자신의 재능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만 사용하라고 말한다. 재능은 바로 시장에서 팔릴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실력만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시장에서 노래만 잘 부른다고 팔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 외의 외적 요소를 겸비하고 공개경쟁에 나서게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백만 명의 탈락자는 자신의 쓸모없음을 공개적으로 낙인 받게 된다.

더구나 공개경쟁의 과정에서 상생보다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떨어뜨려야 하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이 과정에서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려 집단 악플 세례에 큰 고통을 당한 참가자도 생겼다.

<슈퍼스타 K>때문에 어느새 신화의 창조자가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바뀌었다. 자신의 재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성립하기에 각계 각 층, 연령과 성별, 지역, 직업을 불문하고 많은 지원자가 몰린다. 하지만 나이와 외모는 내세울 수 없지만 실력 있는 가수 지망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전제조건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것은 상품화의 요건인데 인생의 애환과 역정의 스토리를 가져 한다. 지원자 때문에 시청자들이나 참여자들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종 등급에 오르는 이들은 10대와 20대 위주이고, 외모도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실력을 우선하는 것과 달리 <슈퍼스타 K>가 퇴행적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정보비대칭을 해소시켜줄 줄 알았던 <슈퍼스타 K>는 반대의 결과로 치닫는다. 최종적으로 정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악순환은 반복된다.

일단 이 프로에 출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사생활을 팔아야 한다. 그 사생활은 일상의 평범한 삶이 아니라 뭔가 강렬한 것이 있어야 한다. 리얼리티 프로에서 보여주는 것은 드라마틱한 삶이다. 참여자는 삶은 상품이 된다. 극적인 삶을 산 사람일수록 상품가치가 높아진다. 극적인 삶의 이력이 없는 참여자는 상품가치가 없어진다.

극적인 삶은 대개 고통스러운 삶을 포함한다. 핍박과 억압의 삶은 상품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누가 더 많은 고통과 억압의 상처를 갖고 있는지를 경쟁하는 가운데 시청자는 눈물을 통해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뿌듯해 한다. 상품에 대한 대금을 치르듯이 자신과 일치하는 삶의 코드의 소유자에게 한 표를 행사하거나 댓글을 달아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미 최고의 상품으로 뽑을 대상은 이미 정해져 있는 법. 한참을 지난 다음에야 화려한 쇼의 들러리였음을 알 게 된다. 더구나 이미 강렬한 맛은 마약중독과 같아진다.

근본적으로 <슈퍼스타 K>의 참여자의 실력이 정말 실력인가. 호응을 얻으려면 독창적인 실력은 필요 없다. 일단 그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모두 유행가들이다. 재롱 잔치와 노래경연대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래 신동을 뽑는다고 큰소리치고는 다른 가수의 노래를 흉내 내는 수준이다. 즉 남의 흉내를 정말 잘 낼수록 능력을 인정받는다.

자신이 창작한 곡이나 새로운 노래는 오히려 전문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과연 실력 있는 이들이 데뷔할 수 있고 자기 실력으로 오랫동안 활동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미 유명한 작곡가가 대신 노래를 만들어놓고 있으니 그런 의무적인 구조 속에서 아이돌 그룹과 같이 남이 만들어놓은 노래나 춤을 흉내 내다가 스러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마도 <슈퍼스타 K>의 승리자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의 운명과 같이 음악을 버리고 연기자로 말을 갈아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쉽지 않다. 대부분 기획사와 방송사만 좋은 일 시킨다. 그것은 상품화된 재롱둥이들의 운명이고, 그것을 <슈퍼스타 K>가 양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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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