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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법

국제법적 취약성, 정부 차원의 외생적 제약 존재하므로 단계적 접근 중요

문화재는 그 자체로 ‘근대적 정신’을 함축한다. 문화재라는 용어 자체가 국제조약에 처음 등장했던 것은 1954년 「헤이그협약」이고, 문화재의 기원국 반환을 처음 규정했던 것은 1970년 「유네스코협약」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재의 약탈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집중되었으나, 문화재를 공공의 가치 또는 자결권 차원에서 보호의 관점을 수립했던 것은 그리 멀지 않은 20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따라서, 여기에 한계와 모순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계란 국제조약이 갖는 내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국제조약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적용할 수 없다는 비소급효의 원칙과 불법성의 판단은 행위 당시 법을 기준으로 한다는 시제법의 원칙이 내재해 있다. 즉, 약탈의 시대에 약탈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으니, 합법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대면한 모순이다.

그러니, 1978년 Amadou-Mahtar M’Bow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문화재 반환에 관한 그로테스크한 호소문(A Plea for the Return of an Irreplaceable Cultural Heritage to those who Created It)은 결단코 ‘법의 규율’을 말할 수 없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Polybius의 ‘다른 나라의 불행으로 너의 나라를 치장하지 말라’라는 경구를 들어 그저 호소할 뿐이었다. 따라서, 문화재 반환이란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을 가지고,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할 미래의 방안을 탐구하는 일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문화재 반환의 문제는 크게 5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전시 이전된 문화재, 둘째, 식민지배 당시 이전된 문화재, 셋째, 밀거래 문화재(도난 문화재·불법반출 문화재), 넷째, 국가분리에 따른 문화재 승계, 다섯째 나치에 의해 약탈된 유태인 예술품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다른 원인에서 기인했으므로 각각의 성장과 발달에 차이를 가져왔다. 따라서, 문화재 반환을 위해서는 이들 5가지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시 이전된 문화재는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전후 강화조약에서 문화재를 다루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1954년 「헤이그협약」체계에서의 문화재에 대한 관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법 원칙은 1648년 「뮌스터조약」이 제공하고 있는데, ‘사유재산의 전시 수용금지원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럽 공법의 역사에서 공공재산의 전시수용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먼저 주목해야 한다. 만일 어떤 범주를 통해 공공재산이라 하더라도 전시수용이 금지된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문화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문화재라는 근대적 법 개념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1954년 「헤이그협약」 제1의정서에서 파생된 ‘전쟁 배상금으로서 문화재 억류 금지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얻어낸 경험칙들을 성문법전화(codification)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국제사회에서 지금까지 가장 큰 논란이 되는 ‘restitution’과 ‘restitution in kind’를 구분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유네스코는 2006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전된 문화재 원칙선언」을 채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으며, 문화재청은 이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는데, 세 번의 정부간 회의(2006년, 2007년, 2009년)를 거쳤음에도 최종적으로는 20010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이 좌절되었다. ‘전쟁배상금으로서 문화재 억류금지’와 ‘restitution in kind’를 상호 보완적으로 볼 것인지, 배타적 개념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문화재청은 ‘충돌되는 배타적 개념’으로 인식한다.

식민지배 당시 이전된 문화재는 1973년 유엔총회결의 3187과 ‘return’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국제규범에서는 국제인권조약과 결부되어 있다. 특히 1966년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에서는 ‘문화적 권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문서목록에서는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된 「ICPRCP(문화재반환촉진정부간위원회) 30주년 기념 전문가회의 결과문」(소위 ‘서울선언문’)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Human remains의 문제는 그것이 갖는 폭발성으로 인해 다수의 별도 soft law를 유엔이든, 유네스코에서든 생산해 내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진행된 「Toi Moko사건」이나 영국의 「17 Tasmanian Human Remains 사건」에서 사안의 본질이 논의되었다.

밀거래 문화재(도난 문화재·불법반출 문화재)는 국제 규범력 차원에서 모범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국제사회는 「1970년 유네스코협약」에 이어 「1995년 UNIDROIT협약」을 마련했다. 전자가 문화재의 이동차원에서 불법거래를 제한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각국의 사법상 기준을 통일시킴으로써 loophole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2013년 6월부터는 유네스코에서 「1970년 유네스코협약 운영지침」 제정을 위해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2014.5월) 4번째 초안을 회람하여 각국이 검토 중에 있다.

국가분리에 따른 문화재 승계문제는 전통 국제법에서는 국가승계, 정확히 말하면 재산승계의 일환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문화재 문제로 볼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러시아연방의 구성국가들이 민스크에서 체결한 「Agreement on the Repatriation of Cultural Property to the States of Origin」(1992)과 2001년 전 유고슬라비아의 5개 승계국 사이에 체결한 「Agreement on Succession Issues between the Five Successor States of the Former State of Yugoslavia」(2002)을 참고할 수 있다.

나치에 의해 약탈된 유태인 예술품의 문제는 2014년 3월 개봉한 영화 「모뉴먼트 맨(The Monuments Men」을 통해 문제의 발단을 접근할 수 있다. 또한, 1998년 美 클린턴 행정부가 주도한 「워싱턴 선언문」도 좋은 학습의 동기를 제공한다. 특히, ‘Adele Bloch-Bauer의 초상화’(Gustav Klimt 作) 등 5편의 그림과 관련되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Altmann 사건」이나 스톡홀름박물관과 관련된 「Blumengarten 사건」은 나치에 의해 약탈된 유태인 예술품 문제가 갖는 본질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문화재 반환을 국제법적 측면에서 접근하기에는 아직도 국제사회는 유아기 수준이며, 유용성 차원에서는 더더욱 신뢰하기 어렵다. 따라서, 각국은 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거나 구입, 기증 등 대안적 방안을 시도한다. 문화재청도 지난 2012년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www.overseaschf.or.kr)을 설립하여, 민간과 정부 간 이원적 접근(two-track)을 통해 다각적인환수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외국 형법에 의한 수사공조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4. 4. 25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환수된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9점의 인장은 문화재청과 美 국토안보수사국(HSI) 간 공조를 통해 환수되었는데, 그 연결점은 1948년 美 형법(연방도품법/NSPA)이었다. 또한, 국제법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촉법적 관점(conflict of law)에서 해당 문화재가 소재하는 국가의 법률을 근거로 ‘동산회복소송’(replevin)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법적 취약성은 국민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현실적 제약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제약은 외생적인 것이어서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인내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지혜롭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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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