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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한국의 기록유산

2011년 5월, ‘5.18광주민주화운동기록물’과 ‘일성록’ 세계기록유산 등재 확정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은 기록으로 완성된다. 때문에 무슨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지, 남겨진 기록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기록에 있는 내용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인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어떤 기록들은 다른 기록들보다 좀더 중요하다고 판단되고 주목받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듯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고, 기록들을 보존하고 이용하는데 차등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록들이 더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세부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은 그 내용의 중요성, 신뢰성과 형식, 매체 자체가 가지는 특성 등으로 귀결된다. 기록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어떤 실제 활동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이 아닌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그 내용의 증명과 설명, 교차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 교육과학 문화기구)의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기록유산(documentary heritage)의 효과적이고 적절한 보존을 장려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접근과 이용을 지원하며, 그 존재와 의미를 널리 인식시키는 사업이다. 일종의 ‘기록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세계기록유산은 지역자문위원회, 국가자문위원회, 국제자문위원회를 거쳐서 국제연합 사무총장의 승인하에 등재후보 상태, 등재 상태로 등록된다.

즉, 해당 기록유산이 인류 공동의 문화적, 사회적 유산에 해당된다고 판정되는 경우에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칭호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 주요한 등재기준은 해당 기록유산이 일국을 넘어서 세계 각국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는지, 역사상 일정 시기의 특성이나 변화상을 반영하는지, 역사적·문화적 발전에 관련된 장소, 인물, 주제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지, 형식이나 형태상 중요한 표본인지 등이며 부수적으로 보존성이 훌륭하거나 희귀한 경우도 도움이 된다. 또한 2007년에는 사회적/정신적/집단적 중요성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특정 기록유산이 특정 집단의 정체성 혹은 사회통합에 기여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록유산이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외국의 대표적인 세계기록유산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기록물, 안네 프랑크의 일기, 노르웨이의 아문센 남극탐험 필름, 덴마크의 안데르센 원고 및 서신, 도미니카 공화국의 인권운동과 저항운동 기록물(1930~1961),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경, 미국의 오즈의 마법사 영화필름, 영국의 캐러비안해 노예 기록물, 오스트레일리아의 제임스 쿡 인데버호 항해 일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기록물, 인도의 리그베다 필사본, 인도네시아의 나가라 케르타가마 (현존하는 最古의 야자나무 잎사귀 필사본), 캄보디아의 투올 슬랭 학살 박물관, 태국의 랑캄행 국왕 비명(碑銘), 터키의 이븐 시나 저작물, 폴란드의 바르샤바 게토 기록물,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에 관한 권리 선언(1789-1791), 필리핀의 민중혁명 라디오 방송 등 300여 종에 이른다.

기존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당대의 아시아 불교 경전 다수를 집대성한 팔만대장경,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진 연대기 사료인 조선왕조실록, 한글 문자를 만든 기본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자세한 해설로 이뤄진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승정원에서 만들어진 일일국정기록인 승정원 일기, 조선왕조의 사상적 기반인 유교의 의례행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정리한 의궤, 당대 동아시아 의학서를 집성하고 인체와 질병, 우주의 원리를 하나의 지식체계로 설명한 동의보감이 었다. 이들은 보통 10~19세기에 제작되었으며 내용 대부분은 한자 텍스트로 구성되어있고 기록의 생산자나 1차적인 수혜자가 지배층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 그동안 한국이 소개하기 쉽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쉬웠던 기록유산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번에 새롭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일성록은 조선 후기인 1760년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입장에서 편찬된 기록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소장 중이며 총 2천329책이다. 승정원일기가 승정원에서 작성한데 비해 일성록은 국왕 자신이나 규장각에서 작성되었다. 또한 실록의 경우 국왕이라도 열람할 수 없는데 비해 일성록은 그러한 제한이 없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열람활용하기 위한 항목별 분류와 요약문이 존재했다는 특징이 있다. 결국 일성록, 승정원일기, 실록은 작성 및 편찬자의 성격, 기록작성의 1차적인 목적, 구성형식 등에서 차이를 가지며 이러한 차이 때문에 당대의 사실을 비교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기록물은 대한민국 광주에서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군부세력에 대항한 민주화운동과 이에 대한 진압에 관련된 기록들이다. 정부·전남도청·광주시청·광주 경찰서 등 공공기관이 생산한 자료 등 25건, 군사법기관 재판자료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자료 등 5권, 시민 성명서·선언문·취재수첩·일기 등 21건, 사진자료와 필름 3750점,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 1만2766장, 국회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회의록 3권, 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 3880권,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3471페이지 등으로 구성된 이들 기록들은 국가기록원,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회기록보존소, 육군본부, 미국 국립기록청 등에서 소장 중이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기록물의 등재는 다른 한국의 기록유산들과 구분되는 특정한 의의를 지닌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전택수 씨는 ‘민주화의 가치 등 5·18의 의미가 당시 다른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끼친 영향, 다양한 기록물 속에서 나타난 보상원칙, 재판 결과 등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끼친 영향이 한국을 초월한 세계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의 역시 앞으로 등재를 확대해나가는 데 중요하다. 첫째, 전근대시대에 생산된 기록이 아닌 현대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는 현대인에게 보다 이해되기 쉬운 기록들에서부터 관심과 이용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민주화운동이라는 현시대의 범세계적인 공감과 지지를 받기 적합한 활동에 관련된 기록이라는 점이다. 나아가서 민주화운동만이 아닌 범아시아, 범세계적인 공시적인 대상 및 소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여러 소장처에 나눠져 있는 특정 주제에 관련된 기록들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원래 생산자와 목적이 다를지라도 연계성과 관련성이 있는 기록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묶여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일부 외국의 기록유산들 중에서도 나타나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이번 등재가 유사한 특징을 가진 기록들에 향후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례로 작용될 가능성이 있다.

향후 한국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세계 유일의 원나라 법전 원본인 ‘지정조격’(至正條格)을 몽골·중국과 공동 등재하는 방안과 호주, 필리핀, 한국 등 아태지역 관련국들이 ‘일제 식민치하의 정신대 관련 기록’을 아태지역기록유산 혹은 세계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는 방안 등이 있다. 또한 경상북도에서는 1670년쯤 안동 장씨가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인 ‘음식디미방’과 1552년 이전에 한문으로 쓰여진 국내 최고(最古)조리서 ‘수운 잡방’을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앞으로 한국의 기록유산이 잘 보존되고 활용되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인지가 조사되고 분석되어야 한다. 둘째, 개별 기록유산들이 가지는 물리적·화학적·지적인 성질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와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셋째, 기록유산들이 가지는 특징과 그것을 현재와 미래에 최대한 다방면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장기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이런 방안들은 장기적으로 다양한 계열과 분야가 협업해야 하나 우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관련 주무부처인 문화재청, 문화관광부, 국가기록원 등에서의 체계적인 정책 수립과 안정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에 문화재청에서 ‘국가기록유산’이라는 일종의 기록문화재 분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나 관련된 사업과 예산을 살펴보면 미약하다. 오히려 많은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으나 전문지식과 노하우 미비로 난항을 겪고 있다.

2013년 제11차 세계기록유산 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나 구체적인 개최도시는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광주에서는 5.18광주민주화운동기록물의 등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유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2001년 제5차 세계기록유산 회의는 청주에서 개최되었고 이 회의에서 직지심체요절이 등재되었다. 2013년 회의가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실제로 추진되더라도 한국의 기록유산 및 세계기록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크나큰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기록이 기억을 구성한다면, 기록유산은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우리의 기억은 미래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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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