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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맞아 돌아본 김구의 문화강국론

민주국가를 이룰 수 있는 힘은 공화주의적 사회성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폭압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정부 또는 민간 차원에서 성대하고 다양하게 열렸다. 그러나 이들 기념행사 대부분이 광복 70주년을 구실로 내세운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이벤트성 행사나 축제에 머물렀을 뿐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겨레사랑과 독립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려는 취지와 거리가 멀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우리 현대사에서 광복은 남북분단 및 동족상잔의 한국전쟁과 불가분하게 결합된 역사적 사건이다. 아쉽게도 우리민족의 해방은 자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8·15 해방은 일제가 연합국에서 패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물론 우리민족은 나라를 강탈당하기 전인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내내 민족해방운동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그러나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제의 폭정과 탄압으로 우리의 민족운동은 자력으로 민족해방을 쟁취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비록 태평양전쟁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대일전에 참전하고 미군과 공동으로 한반도 침투훈련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전체로 보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승전국인 연합국을 상대로 독자적 발언권을 행사할 정도의 영향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로 말미암아 일제 패망 후 한반도는 비록 외관에서는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지만 그 실질에서는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미국과 소련의 국제적인 세력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민족적 요구를 앞세우며 독립방안에서 미소 양국과 대립하였던 민족운동세력은 건국과정에서 배제되고 심지어 탄압대상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의 상징이기도 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였다. 해방 후 미·소가 주도한 독립정부의 수립과정은 결국 적대적인 남북분단을 불러왔다. 불과 얼음처럼 공존할 수 없는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를 대표하는 적대적 권력이 남북에 들어서자 남북 정부는 곧바로 정통성 경쟁과 적대적인 충돌을 확대시켜 갔다. 그 귀결이 대량의 동족상잔과 파괴로 남북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적대감을 남긴 한국전쟁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이 말하듯 70년 전 해방은 진정한 자주독립의 오랜 꿈을 실현시킬 수 없었던 미완의 해방, 달리 말해 민족해방의 과제를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긴 반쪽짜리 해방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60여년이 흘렀지만 일제 강점기의 다양한 민족운동세력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합의하고 그 실현에 힘을 모았던 독립민주공화국, 곧 안으로 민족구성원이 화해 상생하고 밖으로 온전히 자주권을 행사하며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민족국가 건설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적대적 대립을 확대하면서 국가권력을 강화해 왔다. 이런 까닭에 광복 70주년이라고 상투적으로 기념하고 환호할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을 기리고 기념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성찰해야 한다. 자주적이고 자유롭고 민족구성원이 서로 화해 상생하며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통일국가는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70년 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이라는 글로 우리가 세워야 할 독립국가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 첫째는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둘째는 국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국가, 셋째는 인의(仁義)와 자비, 사랑이 넘치는 문화강국이었다. 이 셋 가운데서 광복 7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유달리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문화강국론이다.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이란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달리 말해 그 국민의 공화주의 사회성이 온전하게 성숙해 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자주독립국가, 민주국가를 이룰 수 있는 힘은 결국 그 국민들의 문화적 역량, 곧 성숙한 공화주의적 사회성에서 나온다. 70년 전 해방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없었던 까닭은 결코 독립이나 민주주의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이 그 염원을 이룰 문화적 역량 곧 사회적 정치적 역량이 미숙했기 때문이었다. 그 역량이 성숙했다면 외세의 개입을 극복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지난 70년간 우리 국민의 문화역량은 과연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수준은 곧 그 국민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한다. 우리의 정치현실을 보면 우리 국민의 문화적 역량은 여전히 미성숙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오랜 민족적 과제 해결을 여전히 숙제로 안고 있는 우리에게 이 시점에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인의(仁義)와 자비, 사랑이 넘치는 문화강국을 꽃피울 국민적 사회성을 개발하고 성숙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이 그 해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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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