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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를 통한 나눔과 협동의 생활 추구해야

지역화폐운동,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20여 년 전 한국 시민사회는 일본의 생협을 비롯하여 지역화폐운동 등 사회경제적 운동 모델을 탐방하고 이를 한국사회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흐름에 편승해서 예의 그 생협과 생협운동을 하는 활동가, 지역화폐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왔다. 당시 한국의 시민운동은 최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총선연대 활동, 반부패 운동, 시민권리 운동 등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었으며 어쩌면 정당보다 더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민운동은 모두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으로, 기본적으로 정치와 경제, 사회와 경제의 분리 속에서 진행되었다. 즉 경제생활에서의 민주주의, 일상 소비생활에서의 민주주의의 문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시민운동이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진 것은 한국 시민운동이 군사정권과 독재정권에 저항해서 정치사회 민주화 운동 위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한국 시민운동과 시민운동가들은 매우 정치의식이 높고 시민운동 또한 민주화라는 가치를 이념으로 삼고 있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지역화폐운동이 일어나는 생활과 마을, 동네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약했던 것이다. 일본의 생협운동이나 지역화폐운동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일상생활, 경제생활에서의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지역화폐는 우리 사회에서도 몇십 년 전부터 전국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자발적 경제운동 중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지역화폐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역화폐가 가지는 연대성, 공동체성, 만남, 신뢰 등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관념이 우리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사회는 해방 이후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면면이 이어져 오던 마을과 동네에 기반을 둔 경제모델, 대면(만남)형 경제 모델, 나아가서 연대성과 신뢰에 기반을 둔 경제 모델은 좀 심하게 표현하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런 결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이외의 경제는 경험해 보지 못하였고 지역화폐 등의 경제모델은 매우 낯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화폐는 무엇을 말하는가? 왜 우리의 계나 품앗이 등이 지역화폐인가? 나아가서 우리사회에서 지역화폐 경제모델이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를 풀어나가보자.

거래와 매매, 소비를 비롯한 경제생활에서 화폐는 필수적인 요소이자 제도이다. 화폐는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고 교환행위를 하는 순간부터 존재했다. 화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국가 화폐는 해당 국가의 법률로서 그 위상을 부여받고 화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IT의 발달 등으로 신용카드에서부터 상품권 등 다양한 거래 수단이 통용되고 있다. 이들부터 법률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유통수단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화폐는 국가화폐와는 다르게 자발성, 공동체성, 연대성, 보충성, 순환성 등의 고유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지역화폐는 한마디로 지역 순환체계이며 특정한 지역에서 통용되는 지역통화이다. 돈이 없어도 거래가 가능한 것이 지역화폐이다.

‘지역화폐는 참여자들간의 약속이자 신뢰이다’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이 개념자체가 추상적인 것만큼 지역화폐의 종류와 유형, 모습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국가화폐처럼 교환과 거래에서 그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화폐를 사용하는 것부터 화폐는 사용하지 않고 장부에 기록하는 것으로 거래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교환과 거래가 마치 시중 은행처럼 숫자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지역화폐의 핵심 개념은 특정한 커뮤니티(마을, 동네, 소규모 지역 등)을 토대로 한다. 커뮤니티의 범주도 그 지역화폐의 사용과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곧 범주가 되는 것이다. 즉 외부적 규정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의 내부적 약속인 것이다. 거래의 방식, 국가화폐와 지역화폐의 교환 비율 등의 규칙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해서 만들게 된다. 이상이 지역화폐를 구성하는 개념들이며 이는 곧 ‘약속’인 것이다.

한국에서 지역화폐로 유명한 대전의 한밭레츠를 살펴보자. 레츠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교환거래체계로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통해 회원들이 노동과 물품을 거래한다. 즉 나의 재능과 내가 보유한 물건을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나는 필요로 하는 것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대전의 한밭레츠는 현재 회원이 660여 가구로, 생활을 품앗이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화폐는 ‘두루’로 두루는 본인의 품을 팔아서 번다. 이 두루를 통해서 본인이 필요로 하는 농산물이나 이곳에서 운영하는 의료 생협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 거래에서는 거래액의 30% 이상을 두루로 사용하게끔 약속하고 있다. 한밭레츠도 그러하지만 지역화폐가 이루어지려면 필요조건이 있어야 한다. 주민운동이나 마을에서의 주민들이 다양한 마을살이를 통해서 현금을 통한 거래행위만이 아니라 품앗이, 나눔 등을 통해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때 지역화폐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역화폐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역화폐는 이미 우리에게 존재해왔던 ‘오래된 현재이자 오래된 미래’이다. 계나 두레, 품앗이가 그 원류인데, 이 모두 지역화폐의 범주에 넣어도 전혀 문제없다. 품앗이가 바로 지역화폐이다.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내가 필요로 할 때 이웃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마을 단위의 약속시스템이 지역화폐이다.

최근에는 재래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래시장 상품권이 지방정부에서 발행하고 있는데, 이것도 지역화폐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매년 강원도 화천에서는 산천어 축제를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산천어 낚시를 하고픈 기대를 가지고 축제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입장료로 1만원을 내고 상품권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상품권은 산천어 축제 현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주로 지역의 농산물을 구입하는데 사용한다. 수수인지 콩인지 하여튼 곡식을 샀다. 뭔지 모르게 횡재한 느낌이랄까.

지역화폐가 성공하려면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역화폐운동을 추진하는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것이 ‘길게 보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재래시장 상품권이나 지역축제에서 사용되는 상품권처럼 지방정부나 행정이 적극적으로 그 유통을 지원하고 보장할 때도 지역화폐가 성공하기가 어려운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화폐를 통해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최근 강원도에서 지역화폐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매우 의미 있는 실험이다. 지역경제의 순환시스템을 만들어서 지역경제의 외부 의존성을 낮추고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 지역에 축적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역화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경제행위를 경쟁이 아니라 협동하고 나누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각을 하지 않는 한 정착되기 어렵다. 결국 주민의 참여가 지역화폐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지역화폐가 성장하게 되면 복지비용이나 교육비용 등 행정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지역 내에서 노인들이 아이들 돌봄에 참여하고 부모들이 공동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마을공부방, 마을 도서관, 공동 먹거리, 소비협동조합, 공동 문화공간 등을 운영하는 등 품앗이와 나눔의 체계를 만들어서 비용(현금)이 거의 없이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실험을 해오고 있는 지역화폐, 이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역화폐의 잠재력을 깨닫고 다양하게 지역화폐를 만들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주민들은 우리사회에서 일고 있는 협동조합 바람과 함께 지역화폐를 통한 나눔과 협동의 생활을 추구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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