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서비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 구글, 애플, 아마존뿐만 아니라 국내 통신사와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 간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은 디즈니와 넷플릭스이다.
콘텐츠 공룡 디즈니와 맞선 넷플릭스
디즈니는 7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엄청난 콘텐츠를 쌓아온 업체이다. 그럼에도 (3D 애니매이션의 선구자인) 픽사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소유한) 루카스필름을 인수한데 이어 (수많은 슈퍼 히어로 캐릭터로 전 세계적인 흥행 파워를 갖춘) 마블 스튜디오까지 흡수했다. 이미 공룡이 되었음에도 디즈니는 여전히 콘텐츠에 목말라하며 디즈니 못지않은 콘텐츠를 보유한 21세기 폭스사까지 인수함으로써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콘텐츠 왕국이 되었다. 하지만 시장은 넷플릭스가 미래의 콘텐츠 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디즈니를 넘어선 것이다.
비디오 대여 기업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 블럭버스터와 경쟁하던 넷플릭스가 어떻게 최고의 미디어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우선 넷플릭스의 빅데이터 정책을 들 수 있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 사업을 하면서 사용자들의 선호를 데이터베이스화 했다. 그리하여 각각의 사용자들이 어떤 종류의 콘텐츠를 좋아할지 예측하여 사용자의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 사업 영역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바꾼 후에도 이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넷플릭스는 빅데이터를 단순히 사용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골라주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에도 활용했다. 그들은 빅데이터를 통해 “스릴러, 정치, 음모, 캐빈 스페이시”란 키워드를 골라냄으로써 “하우스 오브 카드”란 드라마를 확신을 가지고 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드라마는 전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 중 두 번째는 다 플랫폼 전략을 들 수 있다. 넷플릭스는 초기부터 콘텐츠 판매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인터넷 망 독점(통신사), 콘텐츠를 무기로 한 하드웨어 판매(소니 플레이스테이션), 폐쇄적인 플랫폼 운영(애플), 특정 소프트웨어 혹은 특정 플랫폼에만 제한적으로 콘텐츠 제공(훌루)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어떤 하드웨어, 어떤 운영체제, 어떤 플랫폼, 어떤 유통 채널이든 가리지 않고 입점했다. 그리하여 PC,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넷플릭스에 접속 가능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애플TV, 구글TV뿐만 아니라 심지어 디비디 플레이어에서까지 넷플릭스를 볼 수 있었다. 독점적인 콘텐츠로 하드웨어 망인 IPTV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국내 통신사들까지 결국 넷플릭스에게 자사의 전용망을 허용하게 된 것은 넷플릭스의 막강한 콘텐츠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플랫폼이라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넷플릭스의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업들은 하드웨어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독점적인 운영체제를 확보하거나, 지배적인 플랫폼이 되거나, 가장 경쟁력이 있는 유통망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돈을 버는 것은 이들 위에서 콘텐츠를 파는 넷플릭스 뿐이다.
넷플릭스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콘텐츠에 대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빅데이터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다 플랫폼 전략이 아무리 성공적이더라도, 콘텐츠 유통망에 불과한 넷플릭스가 공룡 디즈니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미키마우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주 캐릭터를 가진 디즈니, 버즈와 우디, 끝없이 이어질 스타워즈 시리즈, 넓고 깊은 마블 슈퍼 히어로 세계관을 확보한 디즈니를 이기기 위해서는 디즈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콘텐츠 자체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 세계 1억명에 달하는 사용자와 연 매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넷플릭스는 이제 수익의 대부분을 쏟아 부어 콘텐츠 확보에 나서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8년에만 80억 달러를 투자해서 700여편에 달하는 자체 콘텐츠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넷플릭스에는 빅데이터를 통해 사용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안 보고는 못 배길 콘텐츠가 하루에 2편 이상씩 올라오게 될 것이다. 일단 한 번 넷플릭스에 가입한 사용자는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 정책에서 가장 획기적인 것은 “투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한류가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 문화계에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DJ 시기 한국 영화계는 그 어떤 소재도 자유롭게 택할 수 있었고, 표현의 자유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올드보이부터 BTS까지 이 모든 것은 문화에 대한 불간섭주의의 결실이다.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이 20년 이상 한 나라의 문화를 융성하게 할 수 있듯이 넷플릭스의 무간섭 정책은 전 세계 콘텐츠 산업의 부흥을 가져오고 있다. 장르와 제작비, 제작자와 감독을 결정하면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것은 납기뿐이다. 넷플릭스는 확보한 콘텐츠가 유인할 사용자 확보에만 관심이 있을 뿐 각각의 콘텐츠가 단기간에 수익을 벌어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태까지 흥행 여부가 불확실해 만들어지지 못했던 영화들, 정말 필요한 다큐멘터리들, 제작비 때문에 무산된 영화들이 속속 제작되고 있다. 가히 창작자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봉준호감독의 옥자가 넷플릭스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제작의 전권은 봉준호 감독이 가졌고, 넷플릭스는 상당한 한국 가입자를 확보했다. 현재 넷플릭스는 비용 때문에 제작이 거부된 일본의 참신한 애니메이션 기획을 쓸어 담고 있으며, 인도를 비롯한 각국의 콘텐츠를 지원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가장 자비로운 콘텐츠 제작 지원 업체가 되고 있는 중이다.
미래는 콘텐츠 투자자들의 손에 있다
더 이상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독점을 통한 경쟁력 확보는 불가능하다. 개방적인 콘텐츠 유통망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콘텐츠 창작자에게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끝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국의 재벌과 통신사 그리고 인터넷 기업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