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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되어버린 재능기부의 의미

자발적 기부인가, 강자의 갈취인가?

기부, 봉사, 재능기부 모두 좋은 말이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좋은 의미이기도 하고 우리사회에 없어서는 아니 될 소금과 같은 역할이다. 세상에는 좋은 일이나 좋은 의미를 굳이 나쁜 곳으로 끌어들여 꼴사납게 만들어내는 묘한 재주를 가진 이들이 종종 있다. 가끔 아주 가끔 몇 년에 한 번 정도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을 다반사로 볼 수 있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재능기부라는 것이 딱 이 지경에 놓여있다. 특히 예술계에는 재능기부라는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재능갈취라는 용어까지 생겨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의명분에 대단히 약하다. 전통적으로 두레나 계, 향약 같은 상호부조의 관계를 대단히 중시해왔다. 그래서 과거 IMF 경제위기 때 금모으기, 홍수나 재난이 발생하면 들불처럼 일어나는 모금 활동은 대단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국민성이 한편으로는 국가가 당연히 해야 될 책무를 방기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아이러니다. 책정된 국가예산이 모금액이 커지면 원 예산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혹은 예산을 세울 때 미리 기부나 모금을 예상하고 적은 단위의 예산을 세우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재능기부(Talent Donation)란 원래 개인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돈이나 물건이 아닌 자신의 재능으로 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특히 예술계에서 재능기부란 어떤 이(정부든 단체든)의 필요에 의해서 반강제로 불려나와 행해야 하는 예술행위를 뜻한다고 한다. 월 100만원의 수입도 되지 않는 가난한 예술가나 예술가 지망생에게 지원금이라는 달콤한 유혹과 함께 덤으로 제시된 재능기부를 거부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좁디좁은 예술계라는 곳이 한 번 찍히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곳이니 권력과 돈 가진 자들의 횡포에 반항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거나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행동인 것이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기에 항상 손익을 따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국가가 시행하는 사업은 대부분 적자사업이다. 문제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이다. 문화예술을 공공재로 인식하지 않기에 투자대비 손익계산이 앞서니 이익의 지표를 얻으려면 적은 예산에 많은 일과 큰 성과를 얻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니 당연히 정상적인 지출은 불가능할 것이며 제대로 된 일을 수행할 수 없으니 이때 필요한 것이 재능기부인 것이다. 아주 적은 비용으로 많고 괜찮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 누가 아무리 지적해도 없앨 수 없는 꿀샘과 같은 유혹이다. 시급한 해결책은 재능기부가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 사업에 대하여 실질예산이 세워져야 한다. 예를 들면 1억의 비용이 들어야 진행할 수 있는 벽화그리기사업의 예산은 지자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5천만 원 이내로 예산을 세우고 나머지 5천만 원에 해당 분은 재능기부로 처리하는 형국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재능기부의 원래 의미대로라 당연히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거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누어주는 것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필자는 한 번도 그런 유명예술인이나 지위가 높은 예술인에게 재능기부를 요청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재능기부는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해당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기에 예술계의 기득권자들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덕목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사회는 그들에게 재능기부를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특별한 기능이 필요한 영역일수록 ‘열정 페이’니 ‘재능 갈취’니 하는 올바르지 못한 관계가 쉽게 생겨나는 것은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어두운 곳에 불을 지펴 밝게 만드는 것은 정부와 사회가 앞장서서 나서야 할 일이다. 예술가와 그들의 행위인 예술은 사회적 공공재다. 도로나 항만과 같은 기간산업과 마찬가지인 정신기간산업인 것이다.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그들의 기초생활의 보장과 창작지원이 선행되어야 이 같은 재능 갈취와 같은 얼토당토한 요구를 뿌리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정말 재능기부가 필요하고 가능한 예술가들을 이 대열에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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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