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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AI] 이 과제를 ‘한’ 건 나인가, AI인가

새벽 두 시, 심리통계 과제 마감을 앞두고 노트북을 편다. SPSS 창 옆에 ChatGPT가 나란히 열려 있다. “이 데이터로 독립표본 t검정 돌려줘.” 몇 초 만에 코드가 나오고, 분석 결과가 정리되며, 해석 문장까지 출력된다. 과제는 순식간에 끝난다. 그런데 문득, 이 과제를 ‘한’ 건 나인가, AI인가?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다른 질문으로 도망친다. “그래도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 있지 않은가?” 비판적 사고, 연구 설계, 윤리적 판단, 맥락적 해석. 심리학 교육에서 흔히 거론되는 목록이다. 이전에도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불안이 있었고, 결국 인간은 더 고차원적인 역할로 올라서며 적응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계산기는 덧셈을 아는 사람이 더 빠르게 계산하는 도구이다. 엑셀도, SPSS도 마찬가지다. 원리를 모르면 쓸 수 없는 도구들이다. 공학용 계산기를 아무에게나 건네봐야, 원리를 모르면 덧셈 뺄셈 이상은 할 수 없다. AI는 다르다. 원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럴듯한 답을 준다. 핵심적인 사고 기능 자체를 대행한다. 그래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거기에 매달리는 전략은 점점 좁아지는 땅 위에 서는 일이 될 수 있다. 이건 꽤 무서운 인식이고 이 칼럼이 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물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능력의 문제를 잠시 접고, 책임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 보자. AI가 나보다 분석을 잘할 수 있고 해석도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다. 그래도 그 결과물에 내 이름을 적는 순간, 책임은 나에게 있다. AI가 작성한 문장이라도 내 과제에 넣으면 그건 내 주장이 된다. 잘 모르는 말이라도 일단 뱉었으면 내 말이 되는 것처럼. AI가 틀렸을 때 “AI가 그렇게 말했는데요.”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갖춰야 할 것은 AI보다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내 이름을 걸 만한 품질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감각이다.

 

이 원칙 아래에서 수업 현장의 역할이 좀 더 분명해진다. 학생에게 필요한 건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AI의 결과에 자기 이름을 걸어도 되는지 판단하는 역량이다. AI가 돌려준 회귀분석 결과를 보고서에 넣기 전에 이 분석이 내 연구 질문에 맞는 방법인지, 해석이 데이터가 실제로 말하는 바와 일치하는지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AI를 금지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AI를 쓰되, 그 결과를 의심하고 검토하는 과정 속에서 길러지는 역량이다.

 

교수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AI 쓰지 마라.”라는 말은 이미 현실적이지 않다. 대신 “이 결과에 네 이름을 걸 수 있느냐.”라고 묻는 것이 더 나은 교육이 된다. 과제를 설계할 때도 완성된 결과물 자체보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컨대, 분석 결과만 제출하게 하는 대신 왜 이 분석 방법을 선택했는지, 어떤 대안을 검토했는지, AI의 출력에서 무엇을 수정했고 왜 수정했는지를 함께 서술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결과물에 이름을 거는 훈련이 된다.

 

학교 역시 학점으로 책임을 물은 뒤 손을 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책임을 지는 방법, 그 책임에 필요한 판단력을 훈련하는 것 자체가 교육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솔직히, 누구도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AI 지형은 급변하고 있고, 교수도 학생도 학교도 함께 떠내려가는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논의의 중심은 옮겨가야 한다. ‘AI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결과에 이름을 걸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것이냐.’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이 질문 앞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교육이라는 것이 원래 답을 주는 일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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