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공간이며 또한 자신의 삶을 옥죄는 두려움의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어린 청춘. 모든 것은 자연을 통해 연결된다는 순환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일본의 오키나와와 큐슈의 중간에 위치한 섬 아마미. 이 한적한 섬마을에는 각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고등학생 소년 카이토와 쿄코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고 있는 카이토는 더 이상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엄마를 곁에 둔 쿄코는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바닷가를 거닐며 서로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두 사람은 단짝 친구다. 하지만 헤엄을 잘 치는 쿄코는 파도에 익숙하지만 물을 싫어하는 카이토에게 바다는 두려운 존재다.
어느 날 밤바다에 하나의 시체가 떠오르고, 거센 태풍이 섬 전체를 덮치던 날 둘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눈부신 순간을 맞게 된다.
이 작품은 일본의 대표적인 시네아티스트로 손꼽히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작품으로 그녀의 다섯 번째 칸 영화제 진출작으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됐던 작품이다. 그리고 토론토국제영화제,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와 며칠 전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아 많은 영화관계자들과 관객들이 주목했던 작품이다. 가와세 감독은 27살의 나이에 첫 장편영화 <수자쿠(1997)>로 역대 칸 영화제 최연소 감독상을 수상했고, <너를 보내는 숲(2007)>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아버지를 연기했던 무라카미 준의 친아들로 카이토를 연기했던 무라카미 니지로는 이 작품이 첫 출연작이지만 동물적인 연기감각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가와세감독 작품의 팬으로 그녀의 트위터에 올라온 오디션광고를 보고 도전해 쿄코를 연기한 요시나가 준은 이 작품을 통해 스크린을 압도하는 매력을 물씬 풍겨낸다.
살아 꿈틀대는 대자연의 신비를 머금은 섬의 모습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내며, 가와세감독의 미학적 주장과 철학적 가치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열대 기후의 아마미는 아름다운 바다와 푸른 숲이 공존하는 천혜의 섬으로 ‘모든 자연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토속신앙이 그대로 담겨진 곳이다. 이 섬에 대해 가와세 감독은 “삶과 죽음은 바다, 산, 식물, 바위, 물과 같은 자연의 신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침묵하는 이 신들은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쉽게 죽임을 당하지만, 이 잔혹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고 아마미 섬을 현지 촬영지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단풍 소식이 매일 매일 남하하며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창밖의 일렁이는 햇살아래, 붉게 물드는 초록을 바라보며 극장을 찾아가보자. 그리고 가슴 떨리는 치유의 스크린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를 만나는 당신은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이 오로지 하나로 이뤄지는 기적처럼 놀라운 영화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