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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춘할망 (2016)

- 주름이 말하는 숭고한 무명의 삶

한평생 제주에서 해녀로서의 삶을 살아온 계춘할망은 손녀 혜지를 자신의 유일한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서울에서 손녀를 잃어버리고 12년 동안 손녀를 찾지 못한 채 홀로 오매불망 손녀를 기다리며 살아온 노파다. 이 영화는 계춘할망에게 12년 만에 실종된 손녀 혜지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오로지 12년 전의 혜지에게 머물러 있는 할머니에게 미스터리한 존재인 혜지는 이미 10대 고교생으로 성장한 소녀이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혜지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지도를 받으며 실력을 향상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혜지의 감추어진 12년간의 생활은 점점 마을 사람들에 의해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보여지는 용서와 화해를 다룬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영화 속에서 꼬마 혜지는 계춘할망에게 자주 묻곤 한다. “바다와 하늘 중에 무엇이 더 넓을까?” 할머니의 대답은 늘 같다. “당연히 하늘이 훨씬 넓지!” 하지만 12년 만에 돌아온 혜지와의 서먹한 관계 속에서 숨겨진 혜지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바다는 하늘을 품고 있기에 바다가 더 넓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가슴에 품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은 그 타자의 좋은 면만을 가려서 품는다는 것이 아니라, 온 존재로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영화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안에 정작 우리가 누구를 품고 살아야 하는 지를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함께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영화의 백미는 거짓과 비밀을 간직한 혜지가 미술대회에서 그린 유화 그림이다. 영화 속에서 ‘고백’이라고 표현되는 이 작품은 계춘할망으로 상징되는 해녀 할머니가 깊고 푸른 바다에서 수면 밖으로부터 비추이는 ‘빛’을 향해 소녀 두 명을 양쪽 손에 꽉 쥐고 수면으로 부상하는, 다시 말해 빛으로 상승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잘 보여준다.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는 자신(혜지)을 빛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힘은 할머니의 ‘사랑’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빛으로 나아가길 강렬히 희망하는 혜지의 내적 자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는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훌륭한 혜지의 그림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 그림들은 영화를 본 후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데 그것은 ‘용서’이다. 결국 타자를 자신의 마음속에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행위이며, 바로 이 행동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용서는 깊은 인간학의 영원한 주제인 셈이다. 세월이 흐른 뒤, 성장한 혜지가 여는 전람회에서 속 깊이 패인 주름살은 더 이상 여인의 추한 모습이 아니라, 계춘할망의 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삶 전체를 투영해 보여주는 숭고한 인생임을 상징한다. 그 주름은 이 땅의 수많은 이름 없는 여인들의 삶, 즉 무명으로 살았지만 무언가를 진정으로 자신들 마음속에 품어내기 위해 희생한 고귀한 영혼들을 떠올리게 해 숙연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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