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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너의 열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것은?"

 

로 들어가는 통로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물론 주인공 빌리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버지 ‘재키’의 입장에서 들어가 보는 것. 세 번째는 빌리에게 발레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며 길 안내자 역할을 하고, 엄마의 부재를 채워주는 ‘윌킨슨 선생’의 관점이다. 한편으로는 권투와 발레라는 두 갈래 길에 선 11세 소년 빌리의 선택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극적 배경은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Durham)주’다. 이곳은 석탄과 철광석 등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광산 지역이다. 시대적 배경은 1984년이다. 바로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마거릿 대처’ 수상이 집권해 영국의 국가 경쟁력과 경제 발전을 위해 산업 합리화와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때다. 당시 더럼 지역에는 약 13만 명에 달하는 광업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사양 산업으로 낙인찍혀 광산이 폐쇄되고 기존 인력의 60% 이상 감축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나앉게 된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키고 투쟁을 벌인지 1년 되는 때가 1984년이다. 빌리의 아버지 ‘재키’와 형인 ‘토니’ 모두 투쟁의 선봉에 서 있다. 엄마는 1년 전(1983년)에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빌리로서는 모든 게 최악이다(그러나인생 역전의 드라마투르기로서는 완벽한 조건이다).

 

빌리는 학교 공부 외에 권투를 배운다. 빌리의 권투 글러브는 할아버지의 유산이다. 아버지, 형, 그리고 빌리로 이어지는 부계의 전통이며, 빌리가 처한 삶의 조건이고, 가족에게는 가장 친숙한 세계다. 권투는 헝그리 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반면 발레는 낯설고 이상적인 세계를 표방한다. 그것은 음악과 연계돼 있고, 다시 엄마의 유품인 피아노와, 모계와 윌킨슨 선생과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발레는 프랑스 루이 왕실에서 만들어진 귀족의 예술이다. 아빠는 아들이 권투 말고 발레를 배우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발레란 그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낯설고 먼 세계다. 빌리가 부계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모계를 따라 음악과 춤에 관심을 보이는 자체가 마뜩잖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내의 유품인 피아노를 부숴서 벽난로에 장작으로 때는 그의 행동은 극한 상황에 내몰린 가족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모계 쪽으로 관심을 보이는 빌리의 상향을 통제·단절하고자 하는 결단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빌리가 권투 도장에서 친구와 발레 춤을 추며 놀고 있다가 아빠에게 발각됐을 때, 작심한 듯 열정을 다해 자신이 배운 발레 동작들을 선보인다. 그와 같은 아들의 모습을 본 아빠는 말없이 돌아선다. 그리고 그 길로 그는 파업 대오에서 이탈해 광산으로 출근한다. 어린 아들에게서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확고함과 굳은 의지,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가진 삶의 조건과 환경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로 옮겨갈 천재성의 일단을 보았던 것이다.

 

마침내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빌리는 만족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한다. 낙방이라고 생각한 빌리가 상심한 채 자리에 돌아왔을 때, 옆자리의 소년이 위로한답시고 ‘내년에 다시 오면 된다’고 한다. 그의 말에 빌리는 즉각 폭력을 쓴다. 빌리로서는 단 한 번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춤출 때 어떤 느낌이 드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은 신의 한 수다. 그것은 춤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었고, 빌리는 자신이 발레를 위해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피력할 절호의 기회가 됐다. 결국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빌리가 꿈을 펼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빠와 형, 가족, 삶의 조건과 환경이었다. 한 인간의 성장과 변모,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고, 그를 옥죄는 생래적 아비투스일 수 있음을,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임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지금, 굳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 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