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체 또는 퇴행이라고 볼 수 있는 위기 가능성의 징후가 많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 정체성이 없는 정당정치 등은 한국 정치의 낮은 제도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토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의 붕괴와 민주주의 절차의 핵심인 정당체제의 역할이 실종된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국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기 위해 다수결주의와 합의주의 정치모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수결주의는 말 그대로 다수의 뜻이 지배하는 정치원리를 의미한다. 이 원리는 다수를 점한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며, 일사분란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수결주의는 다수를 점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침묵해야 한다. 다수결주의는 이러한 면에서 매우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고 적대적이다. 다수결주의가 작동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합의주의는 다수가 지배하는 정치원리라는 면에서는 다수결주의와 다를 바 없으나, 다수에 의한 지배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 다수결주의와 다른 점이다. 합의주의는 정책을 결정할 때 여·야에 관계없이 폭넓은 참여를 유도하고, 폭넓은 동의를 지향한다. 합의주의는 일반적으로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 내각제에서 나타난다. 합의주의 모델이 작동되는 대표적인 나라는 덴마크이다.
합의주의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공유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타협적이다. 정파 간에 서로 뜻을 모아서 통치를 하는 방식이다. 설령 특정 정치세력이 다수를 점해서 단독으로 집권한다 하더라도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고, 기타 세력 예를 들면 야당에게도 권력행사의 일정공간을 제공하는 구조다. 다수결 주의에서는 통치하기 위해서 필히 행정부를 장악해야만 하지만 합의주의에서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는 정치세력도 통치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집권세력이 이들과 협의해서 합의를 기반으로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합의주의를 포용적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위에 소개된 두 가지 정치모델과 국가행복도를 연결시켜보면 국가행복도가 최상위권에 속한 나라들의 경우는 대부분 합의주의 모델을 갖고 있다. 국가행복도를 20위권으로 넓혀 봐도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합의주의에 가까운 정치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와 욕망을 대변할 투입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 이보다는 사회의 주류, 즉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국사회가 갈등이 많고, 아픔이 많은 것은 이러한 정치체제의 결함 때문이다. 향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되찾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