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필요에 따라 호출되는 MZ세대론
‘세대’로 포괄될 수 없는 청년들은 어디에
나는 서른일곱 살, 1985년생이다. 대구 외곽 아파트에 살고 있고,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아직 25년이 남았다. 학창시절을 모두 대구에서 보내고 짧은 직장 생활 6개월을 제외하면 수도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비장애인 남성, 이성애자로 8년 전 결혼해 아내와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생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런 나와 대학교 1학년을 같은 세대로 분류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MZ세대’의 첫 등장은 아마도 마케팅에서였다. 기업은 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그에 맞춰 상품을 개발한다. 그 과정에서 MZ세대를 겨냥한 상품 판매가 시작됐고, 이에 소비자로서 시민은 반응한다. 도대체 1980년대생과 2000년대 초반생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냐고 되묻겠지만, 상품을 파는 입장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다. MZ세대론이 유효한 것은 광고 시장 뿐이다. 컴퓨터와 친숙하고, SNS가 일상이 됐고, TV, 신문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와는 거리가 있다. 소비자를 상정한 기업은 MZ세대라는 마케팅 전략이 먹히지 않으면 이내 갈아치우면 된다. 90년대 후반 등장한 N세대(Net Generation) 개념을 다시 언급하는 이들은 없다. 마케팅은 공통적인 경향을 파악하여 물건을 팔아먹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걸 정치가 덥석 물어버렸다. 어떤 대선 후보는 ‘민지(MZ)야 부탁해’ 캠페인을 했고, 어떤 후보는 ‘무야홍’을 적극 알리기도 했다. 정치인들도 MZ세대 공략에 나서겠다며 여러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언론은 세대 갈등으로 모든 것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른바 MZ세대가 서울교통공사, 현대차동차 등에 복수노조가 설립한 것을 두고 ‘기성노조가 과도하게 정치 참여를 해서 불만이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든다. 이렇게 새로 설립한 노동조합들이 모두 20대와 30대로 이뤄진 것일까. 정규직 전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의 나이는 제각각이다. 20대도 있고, 50대도 있다. 같은 상황인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노동자도 연령대가 다양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사회적 이슈가 됐던 인천국제공항공사에도 20·30대가 있었고, 40·50대도 있었다.
386세대, 88만원세대, X세대, Y세대 등등. 모든 세대론은 사회의 경향을 살피는 의미 정도는 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세대론이 개개인의 상황을 다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 다른 세대와 다른 특별함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대론은 무언가를 감추고 싶은 이들의 의도만 강조할 뿐이다. 2018년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세상을 떠난 고 김용균 씨,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김군도 MZ세대에 포함된다. 또, 지난 19일 서울 중구에서 스토킹 살해를 당한 32살 여성도 MZ세대 일원이다. 가해자도 35살이다.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는 세대가 언급되지 않는다. 노동권, 성적자기결정권의 문제 앞에 MZ세대가 등장하지 않는다.
MZ세대는 써먹을 필요가 있는 사람에 의해서만 호출된다. “우리가 무슨 호구냐, 부르면 달려 나가게”라는 의문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