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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세상] 조국과 청춘

권력에 빠져 부정을 일삼는 한때의 청춘들

청년층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 생각해보길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서울대를 상징하는 문구로 알려진, 정희성 시인이 재학 시절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관악 캠퍼스 기공식에 맞춰 썼다는 이 시에 대해 정희성 시인은 “학생들이 이 시에서 자기가 몸담은 대학에 대한 긍지를 느끼는 것은 좋지만 자만심에 빠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대학신문’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문구처럼 긍지를 갖고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며 불의에 저항하는 청년들이 많았을 터이다. 그러나 이 청년들도 권력의 중심부인 정·관계에 진출하고 나면 자만심에 빠진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4일 부산대학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인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취소 예정처분 결정을 했다. 결정 이후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아비로서 고통스럽습니다. 최종결정이 내려지기 전 예정된 청문절차에서 충실히 소명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청문절차는 조 전 장관이 아니라 서른을 넘긴 조민 씨가 진행해야 할 일이다. 또, 입학취소를 결정한 이유는 제출 서류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른 경우 불합격 처리를 한다는 입학요강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는 2심에서도 표창장 위조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표창장만이 아니다. KIST 인턴 허위 작성,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증명서 허위 발급 등에 대해서도 유죄 판단을 받았다.

 

자녀가 불행을 겪는다면 어느 부모나 고통스럽다. 조 전 장관은 끊임없이 SNS에 의견을 남기고 있다. 2017년 1월 2일 정유라의 부정 입학 의혹에 대해 조 전 장관은 “정유라,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바로 이것이 박근혜 정권의 철학이었다”고 썼다.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이라면 본인만 아니라 현 정부로 화살이 향할 수 있다는 걸 모를까. 조 전 장관이야 아비로서의 고통 때문에 입시와 관련한 입장이 바뀌었을 수 있다.

 

서글픈 일은 대학에 근무 중인 이들의 반응이다. 조민 씨 입학 취소 처분 결정 직후인 8월 26일 부산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부산대학교 입학전형 공정관리위원회의 조사대로 이 기타 서류가 조민 씨의 합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입학 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사실이 발견될 경우”로 간주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해석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하루 앞서 국내외의 개혁적 교수·연구자 모임인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는 “의전원 입학사정에서 조씨의 전 대학 성적은 전체 3위, 공인영어성적은 4위였고, 자기소개서에서는 의료봉사를 핵심 경력으로 기술해 문제가 된 표창장은 인용하지도 않았다”며 입학 취소 결정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경심 교수 재판 판결문에는 전적 대학 성적이 24위라고 이미 나와 있었다. 입시 부정행위를 집단적으로 옹호하는 대학 교수들의 모습을 보라. 다수 청년이, 아니 당신들이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한 번이나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누가 대학의 미래를 묻거든 ‘조국’을 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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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