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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DJ 두 정치거목, 병상서 극적 화해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0일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극적으로 화해했다.

YS가 이날 오전 병세가 위중한 상태인 DJ를 찾아가 병문안함으로써 애증으로 점철됐던 두 사람의 관계가 극적으로 반전된 것.

한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DJ를 대신해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YS를 맞았지만, YS는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화해를 공식화했다.

병상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이날 극적인 만남은 DJ가 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이후 처음이다.

그 사이 전직 대통령 초청행사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등에서 조우한 적은 있었다. 2005년 11월 DJ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YS가 병문안 전화를 하고, 지난해 10월 YS의 부친인 김홍조옹이 별세했을 때 DJ는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시했지만 의례적인 인사 수준에 그쳤다.

DJ가 폐렴이 악화돼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던 지난달 17일 YS가 비서진을 보내 "조속히 건강을 되찾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 게 전부였다.

앞서 두 사람은 지난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만났지만, 대통령후보 단일화 협상이 실패로 끝난 87년 때처럼 서로를 외면한 채 다른 곳을 응시했다.

87년 야권 분열 후 DJ가 이번에 병상에 눕기 전까지 22년간 두 사람은 반목을 거듭했다. DJ는 문민정부 시절 집권을 위해 YS를 가차없이 공격했고, YS는 퇴임 후 DJ의 노벨상 수상까지 깎아내리면서 반격을 가했다.

특히 YS의 차남 현철씨의 사면문제는 둘의 관계를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 계기였다. 97년 DJ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YS는 수사유보를 결정해 민주화 동지의 대선 승리의 길을 터줬으나 DJ는 2000년 8월에 가서야 현철씨를 사면한 것.

YS는 이런 DJ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DJ가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자 YS는 "그 입을 닫아라"고 독설을 퍼부을 정도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

그런 와중에, YS가 승부사답게 전격적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은 현철씨 등 주위의 설득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철씨는 "더 늦기 전에 화해하실 때가 됐다"며 꾸준히 아버지를 설득했고, 서청원 전의원, 김덕용 김무성 의원 등 과거 DJ의 동교동계와 민주진영에서 한 솥밥을 먹었던 상도동계 인사들도 화해를 적극 권유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YS 측 김기수 비서실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전적으로 각하(YS)의 판단이었다"고 전했다.

역사에 기록될 이날 YS의 DJ 병문안은 무엇보다 동시대를 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착근과 국가선진화를 이끈 영호남 두 정치거목의 역사적 화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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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