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10년 국정주도, 3국 리더십 교체속 對北 틀 새롭게 짜야
복지ㆍ경제민주화 요청 속 성장동력 만들어야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 '박근혜 시대'가 처한 안팎의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3강 리더십의 동시 교체로 한반도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본격화한 가운데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한 북한 김정은 3대 세습정권과 맞서며 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짜야하는 것이 새 정부가 맞닥뜨린 대외 환경이다.
그렇다고 내부의 상황이 간단하지도 않다. 안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저성장, 고령화시대를 맞아 점증하는 국민의 복지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에의 요청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먹거리와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숙제로 꼽힌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사실상 양자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세대간 대결과 보ㆍ혁의 전면전 양상을 띠었다. 그 결과 '박근혜 시대'의 개막이 현실화했다.
정치사적으로 '박근혜 시대'는 는 보수 진영이 향후 5년도 국정의 중심세력을 이어가게 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보수진영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졌던 10년 진보정권을 한나라당 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으로 마감시킨데 이어 보ㆍ혁이 일대일로 격돌한 이번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에 성공, 국정주도권을 거듭 부여잡게 됐다.
무엇보다 '박근혜 시대'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탈출과 국격 향상 등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후퇴와 의회정치의 무력화, 인사와 민주적 소통의 실패 등 '공공성의 결여'로 비판받았던 이명박 시대를 넘어서야 할 과제를 떠안고 있다.
이명박 시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생을 보살피고 의회ㆍ정당정치를 회복해 '새정치'에 대한 갈망에 부응하는 것은 이미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가치와 세대, 계층과 이념에 따라 갈가리 찢긴 우리사회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과제로 꼽힌다.
박 당선인은 '탈(脫) 여의도 정치'를 추구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철저하게 정치 DNA를 가진 인물이다. 어떤 이들은 그 자신을'한국의 현대사'라고 칭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그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래 퍼스트레이디 역할로 정치를 접했고 1998년 대구 달성 보선에서 당선된 뒤 15년간 국회의원의 삶을 살아왔다.
2007년 그는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후 2007년 대선경선에 출마했던 것이나 이 대통령에 맞서 세종시 원안을 사수한 것, 불가능에 가까왔던 4ㆍ11 총선을 극적인 승리를 이끈 것 등을 통해 박 당선인은 명실상부한 여권 대권주자로 우뚝 섰다.
그런 박 당선인의 대선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민생'이었다.
박 당선인은 7월 대선출마 선언 이후 "정치의 목적은 국민 개개인을 편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 "다음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민생을 살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드리는 것"이라고 거듭 밝혀왔다. 국정의 방점이 '민생'에 두어질 것임을 예견케 하는 언급들이었다.
극심한 사회의 양극화로 고단해진 국민의 삶을 챙기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민대통합을 이뤄내겠다는 약속으로 표심을 요청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 11월18일 대선 출정식에서 국민통합과 정치쇄신, 일자리ㆍ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가계부채 절감과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 5세까지의 무상보육 등 중산층 재건 프로젝트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학벌스펙과 무관한 청년 일자리의 확대,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금전보상제 등 비정규직 줄이기, 정년 60세로의 상향, 일방적 구조조정과 해고없는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설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공존을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추진 등의 10대 공약의 세부안들이다.
박 당선인은 복지와 경제민주화에의 강렬한 열망을 등에 업고 정권초 강력한 민생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대선기간 그의 공약 역시 재정수요를 넘어서 표를 얻기 위한 포률리즘적 허언이라는 일각의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구현은 결국 격렬한 진통과 갈등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박근혜 시대'의 또다른 숙제가 우리사회의 대통합이다. 양김(兩金)시대 이후 골이 팬 지역주의의 잔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무현-이명박 시대를 거치면서 각 진영간 갈등의 양상은 한층 얽히고 설킨 형국이다.
사정은 이러한데 정치는 갈등의 조정자이기는 커녕 기득권 추구와 계파싸움으로 날을 샜다. 이제는 정치권 스스로가 갈등의 중심으로 전락했다. 뿌리깊은 양극화는 치유되지 못한 채 지역간, 세대간 전방위 격돌로 심화됐다. 우리가 딛고 선 삶의 터전은 극한의 유동성으로 불안하다고 지적된다.
박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국민 대통합'을 역설했다. 비록 선거용으로 치부됐지만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만들어 스스로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러면서 한광옥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등 호남지역의 인사들을 끌어안았다. 5ㆍ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는 몸짓을 보여주었다. 국민 통합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나왔다.
새누리당이 대선기간 부마민주항쟁의 진상 규명과 유족 등에 대한 예우를 위해 `부마민주주의재단'의 설립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부마항쟁재단설립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이러한 비전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조치였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박 당선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제일 먼저 대탕평 인사부터 펼치겠다. 호남의 인재, 여러분 아들ㆍ딸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지켜 탕평인사를 국정전반에 구현할 수 있을지 여부다.
역대로 되풀이돼온 승자독식과 편가르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인사 대탕평과 지역균형발전의 약속을 지킬 때 '박근혜 시대'는 오롯이 '100% 국민통합'의 시대가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울러 박 당선인은 대선기간 내내 강조해왔던 '정치쇄신'을 추진해야할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상징했던 것처럼 새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은 그 자체로 시대정신이 돼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민심의 혐오를 헤아리고 정치인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대정치혁신을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박 당선인이 내놓은 중앙당의 공천권 축소와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국회의원 후보를 여야가 동시에 국민참여 방식으로 선출하는 방안, 기초자치단체장과 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등은 그 자체로 혁신적인 정치개혁 방안들로 평가받는다.
이런 약속들이 이행될 때 정치는 한층 진일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당선인의 실천만이 남은 과제인 셈이다.
다만 이런 개혁방안들 역시 결국 여야, 정치권의 합의 속에 의회를 통해 추구돼야 하는 사안들이기 때문에 전망은 불투명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잠복해있던 수많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로인해 펼쳐질 복잡한 정국의 상황은 정치개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당선인의 강력한 실천의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거듭되는 '대통령의 실패'로 지적되는 1987년 이후의 5년 단임제를 근본적으로 숙고하는 방안도 '박근혜 시대'의 한 과제로 거론된다.
시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하고 분권형 리더십을 원하는 단계로 와있다는 것인 만큼 박 당선인이 이러한 기운을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있다. 이른바 '분권형 개헌론'이다.
외교적으로 '박근혜 시대'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대북관계의 틀을 새로 짜야할 중차대한 시기라는 지적이 많다.
박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에서 탈피해 대화와 교류를 강조한 유연한 대북 화해정책을 내세우면서 '신뢰ㆍ균형 외교', 평화정착조치 후 경제ㆍ정치적 통일을 한다는 3단계 통일론,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 한중관계의 강화 등을 대북ㆍ외교 공약으로 내걸었다.
바야흐로 그의 외교적 역량이 '박근혜 시대'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