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유럽에서 발생한 난민문제로 떠들썩했다. 시리아에서 시작된 난민의 이동 행렬 규모에 세계는 놀랐다. 이러한 놀라움과 사회적 반향이 지금은 어느 정도 줄어든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유럽에서의 난민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거쳐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가려던 시도는 일찍부터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많은 문제를 안겨줬던 일상이었다.
이번 사태로 분쟁지역, 극한의 경제궁핍지역에서 발생한 난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으며, 이는 전 인류의 문제임이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유럽은 이 난민들을 수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보이고 특히 국가부채 등 경제문제나 실업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과 같은 국가, 또는 자국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상충되는 국가의 경우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돼 쉽게 풀릴 매듭은 전혀 아니다.
이러한 난민문제를 보면 지금 당장 배를 보내서 이들을 구조하고 난민수용소에 있는 이들을 한국으로 싣고 와야 한다는 인도적인 마음이 강렬하게 든다. 우리나라가 이제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니, 국제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논리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지리적, 인종적, 종교적인 이질감으로 인해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보편적 인류애에 바탕을 둔 기초적구호단계 외에는 막상 난민의 규모와 파생되는 문제 앞에서 우리나라가 뚜렷한 답을 내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는 오래전 난민협약 및 의정서에 가입했고 현재 난민을 받아들이곤 있지만 지난 20여 년간 그 수가 4백96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아직도 제도와 정책상의 개선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우선 과제는 난민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변화이다.
이번 사태로 세계를 보는 우리의 시각과, 주변의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교환학생, 언어연수 등의 다양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을 경험하고 그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난민들에게까지 시선을 돌리진 못하고 있다. 대체로 안정된 사회와 그러한 곳의 주민들과 접촉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찾아온 유학생이나 여행객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난민과 유사한 입장의 사람이나 더 나은 삶을 찾아 우리나라에서 힘들게 사는 외국인들에겐 눈길이 차갑다. 결혼이주자와 이주노동자, 탈북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국내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사는지 등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우리도 불행했던 역사로 인해 동포들이 세계 175개국에 흩어져 있으며 이 중 소수 민족 정책의 희생양으로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을 생각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자신의 자식은 자기들이 겪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삼은 외국인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의무를 넘어 그들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피부 색깔과 문화가 전혀 다른 먼 곳에서 일어나는 비극적 현장을 보면서, 우리가 세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또 우리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지 서로 머리 맞대고 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