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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호 사설] 소비하는 대학,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뒤로 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방학 동안 텅 비었던 캠퍼스는 북적거린다. 겉으로 보기엔 생기가 돈다. 생기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시작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설렘으로부터 나온다. 설렘은 다종다기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다양한 얼굴과 얼굴이 마주치고 튕겨났다가 모이는 곳이 캠퍼스다. 대학 캠퍼스는 각각의 고유한 얼굴을 가진 교수와 교수가, 학생과 학생이 서로를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연구실에서 강의실에서 서로의 색깔을 수렴하고 확장하는 자율적인 장소이다.

우리의 대학 공간은 어떤가. 우리는 대학 안에서 인간적 유대의 약화, 인터넷의 사회적 연결망을 통한 포함과 배제의 새로운 정치를 경험하고 있다. ‘각자 알아서 하시오’ 이것은 오늘날 대학인들이 새로운 도덕적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새로운 행동 코드이다. 교수는 학자와 경영자 역할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연구비를 알아서 마련해야 하고, 연구를 수행해서 발표할 때면 그것을 선전하기 위한 홍보활동까지 알아서 해야 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취직해야 한다. ‘각자도생’의 연옥이 지배한다.

현실이 이런데, 대학은 과연 21세기에도 교육과 학문의 두드러진 고전적 제도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학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더 오래 지속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이 제기되는 이유는 교육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미국 사립대학과 경영대학원을 모방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경영 용어에서부터 기업모델에 입각한 대학 경영 방식에 이르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신속한 결과와 효과적 성취의 논리다. 깊은 사유와 서두르지 않는 창조와 신중한 존재의 논리를 따르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대학은 오늘날 여론과 정치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시장의 변동에도 재빨리 반응하는 조직이 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위대한 학술적 탐구와 근본적인 연구, 관념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공학이나 경영학의 적용과 달리 신속히 개발해서 빨리 소비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기본 관심은 다양한 이론의 자기교정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하루 이틀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정크푸드’를 생산, 소비하는 사람들은 수요가 많다는 이유로 높게 평가되는 공학, 경영, 경제, 법률, 정치학, 사회복지, 간호학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위해 인문학을 희생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식가라면 정크푸드에 현혹되기 보다는 차라리 굶주림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대학이 지성적이고 창조적인 ‘슬로푸드’의 논리를 온전히 간직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 관료들에 의해 위로부터 강요된 대학의 자본화와 대학 발전의 신자유주의적 모델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괴한 괴물이다. 이것은 자유와 자율이 없는 학문 자본주의, 자유와 진보의 이름으로 구현된 기술관료적 압제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편향된 기준에 의해 날조된 경쟁이 판을 치는, 그래서 관료들이 선호하는 특정 기관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자유시장의 기술관료적 시뮬라크르이다. 따라서 관료주의적 통치와 대학의 자율과 학문적 자유의 파괴를 통해 강제되고 있는 이러한 학문 자본주의를 극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대학의 자율과 학문의 자유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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