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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당신 덕분입니다

선서(禪書)인 『육조단경』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며 “바람이 움직이는 거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거다.”라고 토론을 벌이는 젊은 스님들이 나온다. 그런 그들을 향해 ‘혜능선사’는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바로 너희들의 마음이다.”

논쟁을 일축하는 선사의 목소리가 자못 준엄하다. 물론 혜능의 이 ‘풍번문답(風幡問答)’은 바람 불고 깃발이 흔들리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이 선문답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 그 자체가 바람이 되고 깃발이 될 수도 있음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스스로를 깃발로 여겼다가 때로는 바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자신의 이익이나 주관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거나 해석하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고 간사한 존재인가.


고희를 맞아 시조집을 출간한 어느 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있었던 일화다. 식순에 따라 주인공이 자신의 가족들을 축하객들한테 소개하는 순서였다. 마이크를 잡은 시인이 한눈에 봐도 외모가 쏙 빼닮은 형제자매들을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가난한 농사꾼집안의 막내아들로, 그럼에도 지방의 국립대학교를 자신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음은 맏이인 큰형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거였다. 나아가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채 농사를 지어 자신을 뒷바라지한 큰형님의 고생도 고생이려니와, 작은 형님과 누이동생이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업전선으로 뛰어든 이유도 자신의 학업을 위한 그들의 희생이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어쩌면 본인의 대학교 ‘합격’이 집안에는 ‘재앙’이었을 거라고 시인은 우스개를 했는데,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가 내심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앞서 혜능선사가 포착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은 어리석고 간사하다. 잘된 것은 자신이 잘해서이고 못 된 것은 조상 탓이라는 옛말도 있다시피, 사람이 ‘나의 나됨’을 ‘당신의 덕분’이었다며 진심으로 깨닫고 감사하기란 드문 편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형제들이 자기를 위해 희생했음을 잊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에 인간적으로 보답기 위해 그는 재물이나 출세에 눈먼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바쳐지는 영광을 형제들에게 돌릴 줄 아는 겸손함을 끝내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겸손함이 만들어낸 드라마가 있었기에 그날의 행사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형제자매 간에 정을 나눔은 결국 자신들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효(孝)를 행함에 다름 아니다.


‘효’를 말하고자 길게 돌아왔다.
가정의 달인 5월이다. 여기저기서 ‘가족사랑’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그 ‘가족사랑’에 ‘효’가 끼일 틈은 없는 것일까? 이 시대 대한민국의 어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빈곤하고 고독하다. 한 신문의 사설에 따르면 48.6%에 이르는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위인 스위스(24.0%)의 2배 수준이고,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률 또한 81.9명으로 미국(14.5명)의 5.6배, 일본(17.9명)의 4.7배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니, 어버이날을 말하고 효를 거론하기가 부끄러운 지경이다. 이렇듯 부모에 대한 사랑이 실종된 마당에 형제자매 간의 우애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우리도 언젠가 그 부모의 자리에 가있을 터이다. 가족의 도움으로 현재의 ‘나’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낮은 자세, 지금은 내가 바람(깃발)이나 언젠가는 깃발(바람)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 마음이 ‘가족사랑’의 시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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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지금, 굳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 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