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발명에는 항상 그들 스스로 던진 질문이 전제되었다. 한자(漢字)만 통용되던 15세기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들도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화두 삼아 집현전 학자들과 수년간의 연구를 거듭한 끝에 훈민정음을 내놓았다. 올해 572돌을 맞는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던진 그 질문이 세기의 변혁을 주도할 창의적 발상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날이다.
어떤 질문은 인류의 기술 문명의 진보를 견인하기도 한다. 20세기 말에 최초의 개인용 PC를 선보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스티브 잡스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컴퓨터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 그 대답으로 그는 21세기 초 인류의 일상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준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이런 스티브 잡스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질문의 달인 소크라테스였다. 이걸 보면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 사고라는 비밀 금고에 두둑하게 쌓여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질문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시대의 난제를 푸는 데 있어 결정적 열쇠가 되는 질문은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혁신적인 시대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질문도 작고 사소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린아이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서부터 개인의 문제를 풀어낼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는 질문, 한 국가의 대사(大事)를 결정하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질문은 그 경중(輕重)을 따질 필요 없이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학생들에게 질문은 아주 훌륭한 학습 방법의 하나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첫째, 질문은 새로운 지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게 해 제대로 ‘내 것’이 되게 해준다. 둘째, 문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셋째, 논쟁에서 서로의 주장을 좀 더 명확하게 해준다. 넷째,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그런데 요즘 강의실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학생을 찾기가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질문 잘하는 유대인 질문 못하는 한국인』의 저자는 학창시절 내내 남이 낸 문제에 정답을 찾는데 익숙해진 우리는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정답 권위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익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교수 위주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강의 도중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질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메모지에 질문을 적어서 제출하게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연습을 지속하다 보면 자신 있게 질문할 용기도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지난 9월 말에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한 특별한 연설이 이슈가 되었다. 전 세계 청년세대를 대표해 우리나라 보이그룹 방탄소년단들이 진심 어린 연설로 감동을 선사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다 실패해 좌절하고 때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청년들에게 그들은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희망을 노래했다. 이 연설에서 그들은 새로운 질문을 세계의 청년들에게 던졌다. “지금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에 꼭 답이 있을 필요는 없다. 어떤 질문은 평생 화두로 삼고 살아야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질문 속에 희망이 있다. 세상을 ‘나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며, ‘나답게’ 살아가게 할 진정한 희망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