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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유튜브에는 없고, 책에는 있는 것들

1450년 무렵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는 포도를 압착하는 와인 프레스기를 개조해 활판 인쇄기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하나의 ‘발명’이란 사건을 뛰어 넘어 ‘문자 공화국’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그 이후 500년 동안 인쇄된 책은 문화와 지식의 중심부에 자리하게 된다.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가 중요한 매체로 등장했던 20세기 중반까지 어쩌면 책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책의 불행은 세상의 지식을 간단하게 숫자 코드로 변환시켜주는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의 조합은 우리의 시간과 생활 구석구석까지, 관계와 존재의 아주 깊은 곳까지 은밀하게 그러나 매우 강력하게 장악해 가고 있다. 어떠한 구조와 상황 속에 놓이면 우리는 그 구조와 상황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된다. 마치 언어의 사용으로 우리가 언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의 사용은 우리가 컴퓨터와 인터넷의 방식으로 길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구조주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린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환경과 구조에 맞게끔 설정된 틀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게 되는 우(愚)를 범할지 모른다. 


최근 몇 년간 책과 연관된 지표를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 기기’에는 이미 책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난다. 우리는 어쩌면 사각의 스마트 기기 안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웹상의 어딘가에 접속하며 시간을 보낸다. 웹 페이지의 링크들 사이와, 또는 스마트 기기의 여러 앱 사이를 분주하게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만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스마트 기기의 잦은 사용이 우리의 집중력을 분산시킨다는 데에 있다. 우리의 뇌는 부하가 많이 걸릴수록 산만해진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우리는 깊이 읽으려하지 않는다. 대충 훑어보고 성급하게 링크를 따라 배회한다. 그래서 인터넷은 홀로 고독하게 무엇인가에 몰입해가는 경험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동일한 정보를 선형적 방식인 책으로 읽는 것과 하이퍼텍스트 방식인 웹 페이지를 이용하여 읽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서 밝혀지기도 했다. 우린 대개 웹 페이지의 글은 대문자 F의 형태처럼 페이지 아래로 건너뛰며 읽는다. 여기에서 우리의 읽기 방식은 필요한 것이라 판단되는 부분만 대충 훑어보고는 빠르게 링크를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글을 읽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일지 모른다. 이럴 때에 우리는 책이 제공해주었던 독자와 작가와의 지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상실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오늘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에 눈길을 돌려보자. 책장에 등뼈를 고스란히 보이며 자신의 언어를 나지막이 들려주고 싶어 하는 문자들의 고백에 조용히 귀기울여보자. 그 깊은 방에서 혼자만의 고독에 몰입해보자. 어딘가에 접속하여 산만하고, 성급하고, 건너뛰는 대신에 어딘가에 홀로 앉아 침묵하고, 집중하고, 기록해보자. 그러면 삶이 조금은 더 천천히, 그리고 의미 있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다. 때때로 그 사색 속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창조적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지 모른다. 때때로 그 책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한 줄의 문장을 뜨겁게 만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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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지금, 굳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 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