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nuclear weapon)와 원자력발전소(nuclear power plant)는 핵분열(nuclear fission)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같다. 원자력발전소(원전)는 핵발전소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를 굳이 원전이라 한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은 핵무기 개발로 미국과 마찰을 빚었다. 그 후 미국의 압력으로 국내 핵기술 개발은 중단되고, 핵이라는 용어도 금기로 되었다. 한국핵연료(주)는 한국원자력연료(주)로, 한국핵연료개발공단은 한국에너지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주의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의 공식 명칭도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이다.
한국에서는 핵은 무기, 원자력은 발전소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청정에너지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면 원전은 안전한 최첨단 발전소가 된다. 그러나 원전도 사고가 나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이 유출되는 핵무기나 별 차이가 없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약 6만 명이 사망했다(피폭으로 암에 걸린 사람도 포함). 1945년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로 약 6만 6000명이 사망했다. 역설적이게도, 대량살상무기인 원폭은 히로시마 이후 사고가 한 번도 없었으나, 핵의 평화적 이용을 표방한 원전은 최근 50년 사이에 세 번이나 사고를 일으켜 인류를 위협했다.
한반도는 핵으로 싸여 있다. 북한에는 핵무기가, 남한에는 원전이 있다. 북한의 핵은 직접 우리 생명을 겨냥하고 있으나, 그들은 체제 방어용이라 강변한다. 남한의 원전은 절대 안전하며 효율 좋은 전기를 공급해준다고 한다. 남북한의 핵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체제가 위협을 받으면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 한국의 원전도 절대 안전의 신화가 무너질 수 있다. 사고가 나면, 원전이나 핵무기는 다 같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 핵에는 민감하나, 남한의 핵발전소에는 둔감하다.
핵과 더불어 최근 지진이라는 새로운 재앙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핵실험으로 인공지진을 만들어내고, 남한에는 자연지진이 빈발하고 있다. 한반도는 이제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때문에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의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경상도 일대 동해안에는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다. 정부는 원전은 “한반도에서 예상되는 최대 규모의 지진과 해일”에도 안전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고는 인간이 예견치 못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핵분열을 발견했을 때 세슘, 플루토늄 등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방사능 물질이 발생하여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것이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과 같다. 최근의 경주 지진을 누가 예상했는가.
북한의 핵이 없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북한 핵에 견줄 것은 아니나, 남한의 원전이 절대 안전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다. 한국처럼 국토면적이 좁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곳에서의 원전 사고는 국가존망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방사능의 반감기를 고려하면 원전사고의 영향은 1만년 이상 갈 수도 있다. 지진이 빈발하고 있는 지금 원전=핵발전소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지진이 빈발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제2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핵폐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남한의 원전도 줄여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