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4.5℃
  • 구름많음강릉 -2.8℃
  • 흐림서울 -3.3℃
  • 흐림대전 -2.1℃
  • 흐림대구 0.8℃
  • 구름많음울산 0.5℃
  • 연무광주 0.0℃
  • 구름많음부산 2.5℃
  • 흐림고창 -2.5℃
  • 구름많음제주 5.2℃
  • 흐림강화 -3.9℃
  • 흐림보은 -3.7℃
  • 흐림금산 -2.5℃
  • 흐림강진군 0.1℃
  • 흐림경주시 0.2℃
  • 구름많음거제 3.3℃
기상청 제공

그림을 그리자

새정부, 새정치, 조직개편, 입학식, 새학기, 정치적인 일들에서부터 신변잡기적인 일상까지 새로운 것들 천지이다. 이번 호에서는 사적인 일을 기억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박사과정에 막 입학하여 모 국책연구원을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의 역할모델이 된 중견연구원께서 겨울 끝자락 찬바람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나에게 ‘즐겨라, 인생을! 지나고 나니 시간은 20대엔 시속 20킬로미터로, 30대엔 시속 30킬로미터로, 40대엔 시속 40킬로미터로 가더라.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길을 잃지 말고 즐기기 위해 준비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십년이 지났다. 그땐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가끔 그 말이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 짓곤 한다.

속도가 빨라진다. 물리라면 젬병인 나에게 과학적 이론을 들이대며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세월이 지날수록 시간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빨라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점점 더 많은 일들이 예고 없이 내 고요한 영역에 습격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들을 주저하거나 밀어내는 적은 없다. 그 일들이 나를 말해주기도 하거니와 내가 그린 그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요즘 인터넷상에서는 명예훼손이란 단어가 형체 없는 무기처럼 떠돌아다니며 많은 희생양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명예’가 뭘까? 형법상으로 명예의 개념은 세 가지이다. 첫째, 내적명예란 사람의 내면적 가치 그 자체를 말하며, 사회적 평가와는 관계없는 절대적 가치로서 타인에 의하여 침해되거나 훼손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의 다른 이름이다. 둘째, 외적명예란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타인에 의하여 주어지는 사회적 평가로서,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부여되는 사회적 가치평가이다.

마지막으로 명예감정이란 자신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주관적 평가 내지 감정이다. 이중 타인에 의하여 훼손될 수 있는 명예란 외적명예이다. 다시 말해 명예란 기하학적 모양을 하고 있는 사회에서 내가 관계하는 내모습의 총체인 것이다. 이처럼 명예는 내가 어떤 사회적 생활을 하는가에 따라서, 사회가 나에게 주는 역할이기도 하고 명함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은 이미 자식, 계명대학교 학생,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적어도 세 개의 사회적 지위를 이미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제부터 어떻게 생활하면서 여러분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그림을 그리자.

사람은 태어날 때 살아갈 나이만큼의 두께를 가진 스케치북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한 장씩 그림을 그려서 넘긴다고. 이미 스무 장 정도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넘겼을 것이다. 그림은 많이 그리면 그릴수록 숙달이 된다.

그러니 열심히 그림을 그리자.

그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많은 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새로운 일들에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일단 그려보자. 밑그림을 옅은 색으로 시작하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그리지 않는다면 스케치북은 영영 백지로 남을 것이다. 만일 두려움이 생긴다면 이 말 한마디만 기억하자.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강연가인 버트란드 러셀은 그 많은 강연을 하면서도 늘 연설하는 것이 항상 두려웠고 마치고 나면 신경을 곤두선 탓에 녹초가 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어느 날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고 난 후에 강연이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망설임만큼 심신을 지치게 하는 쓸데없는 것은 없다. 걱정하고 있는 문제가 대단치 않은 것임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많은 걱정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잘하든 못하는 우주에는 변함이 없다!”

관련기사





[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