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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만년 전부터 시작된 필기구의 발전


●필기구의 역사
기원전 50,000년에서 60,000년에 인간이 돌에 무늬를 새기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한 도구는 돌도끼였다. 돌을 깎는 많은 도구나 조각칼/정 등이 프랑스 남부 지방과 스페인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수 천년 동안 그림은 인간이 의사 소통을 하는 유일한 양식이었다. 점차적으로 도상적인 그림 그리기가 양식화되었고 상형문자의 형태로 변형되어 갔다. 상징적인 그림을 빨리 그리기 위해 나타난 형식이 수메르인들의 쐐기문자나 이집트인들의 그림문자로 발전한다.

글쓰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보수를 받는 필기사가 동물의 뼈나 금속으로 만든 조각칼이나 정을 사용하여 윤을 낸 나무판 위나 점토판 위에 상형문자를 새기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글로 기록을 남기려는 욕구가 날로 증가하면서 실질적인 글 쓰는 도구의 필요성이 증가하게 된다.

잉크의 발명과 글을 쓸 수 있는 종이 ‘파피루스’의 발명은 글 쓰는 도구 분야에서 커다란 도약이었다. 그 당시 “글 쓰는 도구”는 얇은 식물 줄기의 끝을 씹어 날카롭게 해서 붓의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후에는 대나무를 얇고 날카롭게 만들어서 사용했다. 이것은 최초의 만년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시대에서 근대까지 잉크를 찍어 사용하는 깃털펜촉은 가장 중요한 글 쓰는 도구였다. 튼튼한 거위 털을 비스듬하게 깎아서 사용했는데 글을 쓰면 금방 펜촉 끝이 무뎌져 자주 깎아서 사용해야 했다. 진정한 깃털펜촉의 생산은 수세기가 지난 후에야 가능하게 된다. 19세기 초에 독일에서만 연간 대략 5천만 개의 깃털펜촉이 사용되었다. 잉크를 찍어 사용하는 도구에서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은 16세기 중반에 연납연필의 등장으로 가능하게 된다.

19세기 초에 금속펜촉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깃털펜촉의 품질과 같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품질을 가진 이것은 깃털펜촉과 비교할 수 없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금속 펜촉은 나무로 된 몸통에 끼워져 있었는데 항상 잉크 통을 동반해야 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잉크통을 펜의 몸통에 장착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19세기 중반에 독일, 영국, 미국의 발명가들에 의해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 방법은 1884년에 L.E. 워터만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된다. 그는 잉크통과 펜촉을 기계적으로 완전히 통합해서 필요한 양의 잉크가 잉크통에서 나오고 빠져나간 잉크의 양 만큼 공기가 들어가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1930년에 만년필의 경쟁자인 볼펜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획기적인 볼펜의 사용은 1950년이 되어서야 가능하였다. 볼펜은 만년필에 비해 장시간을 사용해도 잉크를 리필 할 필요가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글을 쓰는 도중에 잉크가 나오지 않거나 한번 종이에 쓰면 펜촉의 잉크가 말라 버리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볼펜은 곧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보편적인 필기구가 된다. 더 나아가 볼펜은 비교적 사본이나 세 번 이상 같은 글을 쓰는 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볼펜 이후에는 잉크 롤러펜이 나왔다. 볼펜과 비슷하지만 좀 더 점성이 강한 액체 잉크를 사용해서 부드럽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준다.

타자기의 발명으로 쉽고 빠르고 명료한 표준화된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생활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워드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통해 언제든지 명령을 내리면 입력한 글을 다른 언어로 변화시키는 것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디지털 펜이 시중에 나오면서 디지털 표면에 글을 쓰면 글을 썼던 움직임을 컴퓨터가 인식하여 텍스트로 변환시켜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일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연필의 역사
연필의 역사는 1564년 영국 캠브리아산맥의 포르딜 계곡에서 질좋은 흑연(graphite)광산이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이 광산에서 발견된 흑연을 나무쪽에 끼워서 쓰거나 종이로 감싸거나 실로 감아서 사용하였다.

이렇듯 높은 품질의 흑연 광산이 발견되면서 영국에서는1565년 처음으로 연필공장이 세워지는 등의 발전이 계속되었으나 곡 포르딜 계곡의 흑연이 바닥나게 되자 원료부족으로 품질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독일에서 흑연분말에 유황을 섞어 고형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고 안티모니 등을 혼합하여 '화이트 리드 스틱'이라는 이름으로 제품화하는데 성공, 영국의 연필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후 독일 슈타인에 서는 1716년부터 연필 제조공장을 설립, 본격적으로 연필 품질의 발전에 앞장서서 시작했으며, 1975년에는 프랑스인 니콜라우스 자크 콘테에 의해 연필심의 제조법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어 유황대신 점토를 흑연분말에 혼합하여 고열로 성형화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바로 이 방식이 오늘날 연필심을 제조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흑연과 점토의 혼합비율을 다르게 하여 경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연필이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볼펜의 등장배경
만년필이 제조공정의 개혁으로 대중화가 될 무렵인 1차 세계대전 중 헝가리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라데스라오 비로는 매일 많은 글을 써야만 했었다. 그런 그에게 만년필로 글을 쓰고 원고를 교정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취재 도중 만년필의 잉크가 말라 버려 글을 못쓰는 경험을 자주했고, 원고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다시 잉크를 보충해 넣어야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적으로 물자가 부족하게 되자 질 나쁜 종이가 생산되었고, 만년필의 날카로운 펜촉에 의해 종이가 찢어지는 경우가 많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비로는 잉크를 자주 보충해 주지 않아도 되고, 종이도 잘 찢어지지 않는 필기구를 만들 것을 결심하게 되고, 잉크가 들어 있는 대롱의 끝에 작은 볼(Ball)을 달아 만든 필기구를 생각하게 되었다. 원형의 볼이 굴러 글씨를 쓰게 한다면 종이도 잘 찢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하여 펜촉을 볼베어링으로 대체한 오늘날의 볼펜이 발명된 것이다.
그러나 볼펜제작은 비로가 생각한 것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볼펜의 성격에 맞는 잉크가 없어 잉크가 유출돼 종이를 못쓰게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화학자인 형제 게오르그에게 잉크를 끈적끈적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고, 그런 잉크는 1938년 개발되어 특허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르헨티나로 망명하게 되었고, 망명지에서 추가 연구를 계속한 끝에 1943년에는 이에 대한 특허를 따냈다. 쉽게 써지면서도 잉크가 새지 않는 필기구인 볼펜을 세상에 내놓았다.

볼을 굴려 가며 잉크를 볼에 묻히고, 이것을 종이에 굴려 옮겨 쓰는 필기구, 방향성(方向性)이 없어 어떤 방향으로든지 매끄럽게 써지는 볼펜이 개발된 것이다.

●샤프의 역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샤프'는 1882년 영국의 호킨즈와 모턴이 발명한 단동식 작동 연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정확한 용어는 '샤프연필'이다.
샤프가 대중들에게 실용화된 것은 이로부터 55년 후인 1937년. 미국의 케란이라는 사람에 의해 '에버샤프(ever sharp pencil)' 는 이름으로 제작된 후부터이다. 에버샤프는 심이 회전에 의해 나오는 나선식 샤프였으며, 근래에는 거의 대부분이 노크 작동에 의해 심이 나오는 노크식 샤프가 주류를 이룬다.

국내에서 샤프가 처음 등장한 때는 6.25동란 직전인 4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금속문구 제조업체가 개발한 샤프는 맥주캔을 뒤집어 금속축을 만들고 그 속에 굵게 뽑은 연필심을 끼워넣은 형태였는데 엄격하게 말하면 샤프라기보다는 '금속연필'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목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심이 축에 협착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심이 노출구를 통해 바깥으로 나오도록 고안된 점 등은 샤프연필의 구조적 기능조건과 같았다. 물자가 귀했던 당시에 이 제품은 한달에 18만자루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연필공업이 본격화되자 곧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날과 같은 샤프연필이 등장한 것은 70년대. 72년도에 모나미가 샤프심을 수입해 부품 조립형으로 시중에 내놓은 것이 바로 국내 최초의 샤프연필이었던 것이다.

출처 : 파버카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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