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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가수,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돌(Idol) 가수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목적하에 기획된 가수라는 느낌이 강했다. 동물원의 조련사가 원숭이를 조련해 입장료 수입을 올리듯 기획사 대표는 이들을 조련해 코묻은 10대들의 돈을 챙겼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아이돌 가수가 등장한 초기에는 그런 속성들이 강했지만 이들도 진화를 거듭하며 대중음악 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않다. 물론 상업적인 속성이 사라지지는 않았고, 대중문화라는 게 상업성을 완전히 탈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이돌 시장은 최근에는 침체에 빠진 대중음악의 활력소를 자임하며 위축된 가요계에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이들의 음악이 아티스트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제법 질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자작곡을 싣는가 하면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춘 아이돌도 나오고 있다. 멤버 각자가 연기와 버라이어티 예능물 패널, MC, DJ, 솔로가수 등으로 개인 활동을 하면서 필요할 때는 뭉치는 전략도 요즘 쇼비즈니스 환경에 부합된다.

아이돌 그룹들이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는 것은 아이돌 시장의 대중음악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평가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이돌은 원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팬 영향력이 큰 청소년들을 겨냥해 기획된 가수를 말한다.

본격적인 아이돌 그룹이 한국에 첫선을 보인 것은 대표적인 아이돌 양성소인 SM엔터테인먼트에 의해 1996년 선보인 H.O.T.다. 이어 젝스키스, 신화, SES, 핑클 등을 아이돌 1세대로 보며 1세대 중에서는 신화가, 태생은 1세대와 같지만 ‘따로 또 같이’라는, 1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유통기한을 늘려나갔고 2004년 7집 ‘브랜드 뉴’에서는 팬층을 30~40대까지 확장시키는 등 대중화에도 성공해 1.5세대로 분류된다.

이 시기만 해도 남성 아이돌은 미소년-전사-성숙(세련), 여성의 경우 발랄-청순-성숙(숙녀)순으로 성장하는 식의 컨셉을 변화시키며 수명을 늘려왔다. 이들은 화려한 댄스와 귀여운 외모로 멋있기는 하지만 인간미가 결여돼 있었다. 1세대 아이돌이 대체적으로 5년을 넘기기 힘든 건 기계적이고 인위적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H.O.T.의 경우 3집을 기점으로 멤버들이 직접 작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1세대 아이돌은 남이 작곡한 곡을 받아 립싱크를 해 라이브 실력이 부족한 가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그러나 2000년 13세의 나이로 데뷔한 보아와 2003년 데뷔한 동방신기는 안정된 라이브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둘 다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라 아이돌 그룹이 해낼 수 있는 성과치고는 괄목할 만했다. 그러면서 대중성과 음악성을 조화시켜나가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슈퍼주니어와 SS501은 개별 활동을 미리 예상하고 그룹을 출범시켰다. 두 그룹 모두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미소년들이 포함돼 있다. 특히 슈퍼주니어는 멤버들의 개별 활동을 통해 영화-예능물-드라마 등 각 분야에서 전방위 활동을 펼치며 아이돌 그룹 활동에 새 지평을 열었다.

2006년 데뷔한 빅뱅은 기존 아이돌과 크게 차별화된다. 음악을 자기 주도하에 컨트롤 하는 능력은 다른 아이돌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속성이다. ‘거짓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등 중독성 강한 히트곡들은 음악적 완성도를 갖췄다. YG엔터테인먼트의 실질적 지배자인 양현석에 의해 조기 발굴된 빅뱅은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지고 있다. 멤버 자체에 프로듀싱과 작곡자가 있어 자기들의 노래를 한다는 점, 그래서 각 멤버들의 음악적 역할이 분명하다는 점 등이 과거 아이돌과는 다른 ‘연륜’을 느끼게 한다.

빅뱅 음악에 대해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한국 아이돌의 역사는 순결한 태양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기만 했다. 남성 아이돌은 보이밴드요 미소년의 프레피한 느낌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H.O.T.가 반항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교실안에 갇혀 있었다”면서 “하지만 빅뱅은 양과 음이 공존하는 ‘다크 아이돌’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아이돌로서는 정점에 오르게 하는 요인이랄 수 있다”고 평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선배 아이돌이 추구했던 신비한 이미지를 걷고 친근한 이미지와 쉬운 음악을 탑재해 10대 위주의 팬에서 기성세대로까지 팬층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과 빅뱅은 팬층을 넓혀 삼촌팬, 이모팬이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아이돌의 문화소비 지형을 크게 넓혔다는 점에서는 분명 진화로 볼 수 있다.

아이돌이라고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시대에 맞는 생존법을 찾지 못해 도태된 팀들도 많았다. 이글파이브는 사라졌고 배틀은 싱글 앨범 2장을 내놨지만 기대에 못미쳤다. 꽃미남 5인방으로 구성된 신인그룹 샤이니도 아시아의 정상급 아이돌로 성장한 동방신기의 벽을 넘지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성공한 아이돌에게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들이 거의 YG와 SM, JYP 등 3대 대형 기획사에서 배출됐다는 사실은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한다. 여전히 주류음악의 권력인 지상파 음악PD도 이들 기획사는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이 세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도 아이돌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비주류 아이돌’,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처럼 정체성 자체부터 다양한 아이돌이 나와주어야 아이돌 음악의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다.

아이돌 가수의 상업성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업성에 매몰되서는 안된다. 아이돌이 상업성만을 노린다는 비판을 극복하려면 좀 더 다양하고 수준있는 음악을 추구해 대중에게 ‘쾌’를 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적으로 의미를 남겨야 한다.

아이돌 그룹 중에서는 가장 많은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빅뱅은 G-드래곤이 프로듀싱 능력을 지녔지만 ‘How gee’ ‘This love’ 등 다른 가수가 이미 불렀던 노래를 전체 또는 부분을 빌려 올 때는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창조적 변용이 요구된다. 편곡의 미흡함이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즐겁게 소비되는 음악은 분명 대중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세 기획사 위주로 찍어내는 아이돌 음악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고 트렌드에 민감해 듣고 나면 허전함도 남는다. 음악의 이벤트화라는 기분 같은 것이다. 이제 아이돌 그룹도 단기간에 소비되고 마는 음악 이상을 내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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