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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 100년의 역사


●근대 한국만화의 탄생

1909년 6월 2일 한국만화계에 역사적인 한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났다. 친일단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한협회에서 발행한 민족지 [대한민보] 창간호에 이도영화백의 삽화가 게재된 것이다. 인쇄매체가 생경했던 시대에 신문 만화란 얼마나 신기하고 새로운 장르였겠는가?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신문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히 등장하는 한 컷의 만평이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을 거슬러 생각해본다면 한눈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만화는 문맹에게도 통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일본과 중국 등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휘청거리는 나라의 현실을 안타까워한 26세 애국청년 이도영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매체로서 만화를 선택하여 1910년 8월 31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이 되기까지 한국 최초의 만화가로서 근대한국만화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만화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울산 대곡리 암벽화부터 고구려 무덤벽화에 나오는 춤과 사냥장면, 조선시대 민화의 해학적 표현을 거쳐 근대만화로 이어진다.)

●한국만화의 성장

일제강점기를 지나 강제 폐간된 신문과 잡지가 다시 발행되면서 만화 또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김성환, 김용환, 신동헌 등이 주도적으로 만화연재를 통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만화의 영역을 넓혀갔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피난처인 부산이 만화의 산고가 되었다. 만화의 상상력은 오히려 극악한 상황에서 황폐한 영혼에 위로가 되는 유일한 존재였다. 특히나 생존만이 최대의 목표였던 전쟁 통에 어린이들은 만화 속 세상에서 현실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고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10여년은 한국만화의 제1전성기였다. 1950년대 초반 연령별 잡지가 발행되면서 만화연재도 다양화되었고 1956년 어린이만화 전문잡지인 <만화세계>가 창간되면서 본격적인 만화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단행본으로 발간되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던 김종래의 <마음의 왕관>은 (재)부천만화정보센터(현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복간되어 그때나 지금이나 찾는 이가 많은 인기작품이다.
1950년대 후반에 만화책을 구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만화방이 생기기 시작했고 한 권의 만화책을 여러 편으로 갈라서 빌려볼 정도로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만화가는 상종가를 부르는 인기직업군이었다. 한국 최초의 SF만화인 <라이파이>(산호, 1959년 연재시작)는 만화책 발행날짜에 맞춰서 어린이들이 만화방 앞에 장사진을 치며 줄을 서는 현상까지 일어났고 현재 유명만화가들과 과학자들이 어릴적 <라이파이>를 읽으며 만화가와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명랑만화, 스포츠만화, 순정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등장한 시기도 이때이다.

●한국만화의 암흑기

경제 성장만이 최고의 가치이며 문화생활이 죄악으로 치부되었던 시대에 만화는 국민의 노동시간을 빼앗는 사회악으로 전락하였다. 서슬퍼런 심의의 칼날을 세워 작가들의 창작욕을 꺽었던 1970년대는 한국만화의 암흑기라 불린다. 현재의 연예인을 방불케하는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인 <라이파이>의 산호마저 심의의 불합리함에 분개하여 미국행을 선택할 만큼 당시 작품 활동을 포기한 작가들이 많이 생겼다. (산호화백은 이후 미국에서 인기만화작가로 활동을 하였다) 어린이만화의 대표작인 <아기공룡 둘리>도 애초 설정은 공룡이 아닌 사람이었으나 개구쟁이 캐릭터가 어린이 교육에 나쁘다는 심의 때문에 동물로 설정을 바꿔 최고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웃지 못 할 일화도 있다. 매년 어린이날이면 만화책을 모아서 화형식을 치루며 만화의 위상을 짓밟고 한국만화의 발전을 뒷걸음 치게 한 안타까운 시기이다.

●한국만화의 부흥

1983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침체된 만화시장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며 한국만화 부흥의 신호탄을 올렸다. 장편만화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심리변화와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스토리는 남자들의 발길을 만화방으로 돌리게 했으며 이후 이상무, 이진주, 허영만 등 시대의 걸출한 만화가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농촌만화, 노동만화 등 민중을 계몽하고 사회를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만화 또한 이 시기의 한 흐름이었다.
1980년대의 대사건은 만화잡지의 창간을 빼놓을 수가 없다. 김동화, 김수정, 이두호, 이희재, 윤승운 등 <보물섬>을 통해 지금까지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유명작가들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여러 만화잡지의 창간과 더불어 1988년 최초의 여성만화 전문잡지 <르네상스>의 창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잡지와 단행본의 발행이 만화의 제2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개최 등 산업적 컨텐츠로서 만화의 경제적 측면이 부각된 1990년대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만화대여점의 확산으로 만화잡지의 줄지은 폐간과 이에 따른 출판만화시장의 붕괴가 시작된 양면의 시기이기도 하다.

●미디어 만화시대의 시작

21세기의 대한민국은 IT의 강국이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놓이고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만화의 주요 소비층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인쇄매체보다는 영상물에 더욱 적응력이 높다.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을 가진 만화작가들이 첨단도구의 활용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미디어 만화장르인 웹툰은 인터넷포털 사이트의 연재를 기반으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강풀, 심승현, 양영순 등의 뒤를 이어 임인스, 하일권, 조석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웹툰 작가들은 엽기적인 내용과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퀄리티 높은 이미지 등 소재, 표현방식 등에서 더욱 개성이 강해지며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한국만화의 미래

드라마, 영화, 뮤지컬, 전시 등 각기 다른 장르의 매체에서 만화를 원작으로한 2차 생산물을 만들기를 원한다. 교육 분야에서도 어린이 학습만화, 성인교양만화 등 보다 쉽게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로서 만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도 한국만화를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우리만화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세계유수의 만화축제에 초대되어 판매계약이 성공리에 성사되기도 한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웹, 모바일 등 다양한 형태의 만화가 나오고 활발하게 산업적으로 재생산되어 원작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면 한국만화 제3의 전성기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앞으로 한국만화의 새로운 역사가 100년의 토대위에 풍성하게 새겨지길 기원한다.

○ 한국만화100주년 특별기념전시 [만화-한국만화100년]전
- 본전시 : 2009년 6월 2일 ~ 8월 23일 국립현대미술관
- 순회전시 : 2009년 9월 5일 ~ 10월 31일 제주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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