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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전성시대? 아나운서 수난시대!


‘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에 속하여 뉴스 등을 고지·전달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사람 또는 그 직업.’ 이것이 아나운서의 사전적인 정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이 정의로는 아나운서들의 행보를 다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마도 현재적인 정의를 내리라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기를 보이거나 시청자들에게 웃음까지 전해주는 사람’이 그 의미에 포함될 것이다. 이른바 아나운서가 엔터테이너가 되어 가는 아나테이너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화려해 보였던 아나테이너 전성시대는 오기도 전에 저무는 것 같다. 불황을 맞이하면서 방송사들이 긴축에 들어갔고, 그러자 프리랜서로 고액의 출연료를 받아 가는 이 ‘외부인사들’보다는 방송사의 직원인 아나운서들을 기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프리랜서 아나테이너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방송 프로그램의 메인 MC들이 일제히 외부인사를 내몰고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로 바뀌고 있는 것. 과연 이 상황은 긍정적인 것일까, 부정적인 것일까.

항간에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들이 모든 프로그램들을 장악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실제로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 보면 메인 MC자리에 서 있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과거 그 자리는 본래 방송사 소속에서 프리랜서로 전환한 개그맨들이나 아나운서들의 몫이었다. MBC 라디오 굿모닝 FM을 진행하던 프리랜서 김성주 아나운서는 개편을 맞아 MBC 소속 오상진 아나운서에게 바통을 물려주었고, 프리랜서 정은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스펀지’는 이제 KBS 소속인 김경란 아나운서가 맡고 있다. SBS 아침 간판 프로그램인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 아침’은 이제 배기완과 최영아 아나운서가 뒤를 잇는다.

KBS의 개편을 보면 사내 아나운서들의 프로그램 투입이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우종, 박은영 아나운서가 ‘토요일 가족이 부른다’, 신윤주 아나운서가 ‘책 읽는 밤’, 조수빈 아나운서가 ‘한밤의 문화 산책’등 1TV에 투입되고, 조우종, 이지애 아나운서는 ‘일요스포츠 쇼’, 김홍성, 이선영, 최동석 아나운서는 ‘리빙쇼 당신의 여섯시’, 한석준, 황수경 아나운서는 ‘게임쇼 기막힌 대결’ 등 2TV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아나운서들의 활용도가 교양 정보에서부터 연예 오락 까지 전방위적이라는 점이다.

아나운서들의 이러한 전방위적 배치는 마치 아나운서들의 세상이 도래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실상은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박경희 KBS 아나운서 팀장이 그 명분으로 ‘공영성 강화와 경비절감’을 들고 있다는 점은 이런 상황이 아나운서들의 약진을 나타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비절감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아나운서들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일은 더 많아졌고 비용은 절감되었으니 방송사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다. 하지만 노동의 당사자인 아나운서의 입장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마치 만능인인 것처럼 아나운서들을 예능과 교양을 넘나들게 하는 것은 자칫 프로그램을 질적으로 떨어뜨릴 위험성도 있다. 웃음을 주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것과 정보를 주어야 하는 교양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는 전문화된 프로들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아나운서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입장인 것이 사실이다.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는 고스란히 시청자가 안아야 한다. 방송사의 비용절감이 시청자의 비용으로 상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나운서들이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을 떠 안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아나운서들 자신들의 흔들리는 정체성이다. 이른바 아나테이너의 문제는 여기서 또 불거져 나온다. 위에서 아나운서라는 존재가 이제는 새롭게 정의되는 시대라고 했듯이, 이렇게 모든 방송에 전방위로 투입되는 소속 아나운서들은 기본적으로 전성기를 예고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설 자리를 잃어버린 김성주 아나운서나 강수정 아나운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아나테이너라는 독특한 위치가 가진 한계에서 비롯된다.

아나테이너는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니라 TV 자체의 용도가 급격하게 오락기능으로 기우는 방송 환경 속에서 아나운서들의 새로운 역할 모델로서 등장한 것이다.

‘상상플러스’를 통해 보여준 노현정의 성공은 그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나운서의 신뢰성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으로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은 방송사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고, 점점 입지가 묘연해지는 아나운서들에게는 새로운 활로가 되는 길이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이미 뉴스가 연성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신뢰를 상징하는 아나운서를 방송사의 얼굴처럼 생각하던 시대도 가고 있는 데다가 비용도 적게 들고 시청률도 얻을 수 있는 길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이로써 아나테이너화되는 아나운서는 소모적인 존재가 된다. 대중성을 위해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자기 존재를 소모시키는 작업이기에 아나운서들의 수명은 짧아졌고, 따라서 그것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에서 최대의 수익(인기)을 뽑아내야 한다. 노현정이 그 정점에서 물러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상황에서 아나운서들의 프리선언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프리선언한 아나테이너들의 결과는 어떤가. 김성주 아나운서는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 품 같은 MBC로 돌아왔지만 현재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배제된 상태다. 강수정 아나운서는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하는 프로그램마다 족족 무너졌기 때문이다. 결국 서서히 지상파에서 밀려나 케이블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들을 결국 써줄 곳도 방송사라는 점은 이들의 처한 자가당착을 드러낸다. 방송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아나운서들을 뽑고 있으니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방송사가 아나운서들의 아나테이너화를 긍정한 순간부터 아나운서들은 끊임없이 소모되고 또 충원되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TV의 오락 경향으로 인해 아나테이너들을 필요로 하는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소속 아나운서들은 어쩌면 아나테이너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조차도 근본적인 해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아나테이너라는 존재를 새로운 방송자원으로 인정하고 아나운서와의 (혹은 연예인과의) 역할 구분을 해주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현재 TV를 가득 메운 아나운서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나운서 전성시대가 아니라 소모적 존재로 추락한 아나운서들의 수난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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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왜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해야 하는가? 읽는다는 것은 모든 공부의 시작이다. 지식의 습득은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 정보를 수집해 핵심 가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출해 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읽기다. 각 대학들이 철학, 역사, 문학, 음악, 미술 같은 인문·예술적 소양이 없으면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고전과 명저 읽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교과 과정으로 끌어들여 왔다. 고전과 명저란 역사와 세월을 통해 걸러진 책들이며,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저자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하는 정신의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이 고전과 명저라 할 수 있다. 각 기업들도 신입사원을 뽑는 데 있어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에세이와 작품집을 제출하는 등의 특별 전형을 통해 면접만으로 인재를 선발하거나, 인문학책을 토대로 지원자들 간의 토론 또는 면접관과의 토론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등 어느 때보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을 중시하고 있다. 심지어 인문학과 예술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