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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를 통해 본 독립영화의 미래


연일 화재를 일으키고 있는 ‘워낭소리’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 독립영화계는 매우 분주하다. 필자 역시 지난 10년 동안 대구를 중심으로 독립영화를 하면서 이토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지난 1월 15일 전국의 2천1백개가 넘는 스크린 중 단 7개관에서 개봉한 독립영화 한 편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개봉 영화 중 단연 1위를 차지하더니, 이제 2백만 관객을 앞두고 있다. 이 추세라면 3백만 관객 고지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많은 상업영화들이 “저런 소만도 못한...”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게 되었고, 한국영화의 배우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브래드 피트마저 이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요즘은 술자리에서도 ‘워낭소리’에 대해 너도 나도 다양한 의견과 지지를 보내는 실정이니 이 기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필자의 한 친구는 “‘워낭소리’를 보러 갔다가 자기 앞에서 매진되는 바람에 결국 영화를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고 하면서 마치 성지순례를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개봉한 독립영화 중 역대 최고의 영화는 아일랜드영화 ‘원스’로 22만을 기록하였고, 한국영화로는 ‘우리학교’가 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외에 동성애를 그린 ‘후회하지 않아’와 감동의 축구 다큐멘터리 ‘비상’, 한국독립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성과이자 기념비적인 작품인 ‘송환’ 등이 독립영화로는 흥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제작하여 별다른 홍보도 없이 차츰 시장을 넓혀가다가 수백만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워낭소리’는 이전의 독립영화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셈이니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상업영화로 비교한다면 수천만 관객이 관람한 것과 비견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과연 이러한 ‘워낭소리’현상이 독립영화 중흥과 아울러 한국영화 활성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또는 독립영화계의 영원한 전설로만 남게 될 지가 관건이다.

독립영화란 제작의도가 자유로운 창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영화가 추구하는 시장성을 중심으로 대중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출발선에서 차이가 있으며, 산업적 특성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시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것을 전제로 독립영화를 바라보아야만 ‘워낭소리’가 가져준 커다란 울림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또 다른 대박을 꿈꾸며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우선시된다면 시장에서의 실패는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워낭소리’ 자체가 자유로운 창작의 산물이지 시장에서의 대중의 취향과 트랜드를 조사하고 연구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의도가 중심에 있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국민적 지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낭소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기침제로 어려운 여건과 “빨리 빨리”로 대변되는 성장주의의 가치가 팽배한 현실에서 고향과 가족, 헌신 등의 가치와 느림의 철학을 보여주며 지친 국민들을 위로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워낭소리’의 성공이 진정성 있는 성과라 할 만한 것이다.

이상의 전제를 근거로 ‘워낭소리’와 같은 독립영화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살펴보면 현실을 진단할 수 있고, 더불어 미래를 알아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에는 문화관광부 산하에 영화진흥위원회라는 독자적인 기구가 있다. 이 기구는 정부의 기관이지만 민간위원회적인 성격이 강하여 다른 분야와 달리 비교적 영화계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정책을 생산해 내고 있다. 멀티플렉스로 대변되는 대자본과 함께 한국영화산업의 양대 축을 형성하며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진흥정책 중 독립영화는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예산상의 비중은 극히 적고 제작과 마케팅 등에 일정한 지원을 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워낭소리’의 경우도 4천만원의 개봉비 지원을 통해 개봉할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장중심주의가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면서 이 제도가 사라졌고, ‘워낭소리’가 마지막으로 지원받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그렇게 하여 독립영화는 한 해 1천편 정도에 이르는 단편영화를 필두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이러한 창작 열기 속에서 ‘워낭소리’라는 작품도 탄생했다.

지원이 이렇게 미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들이 나름의 미학으로 선전해오는 것은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개봉하는 한국 상업영화의 다수의 연출자가 단편영화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고 데뷔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모든 단편영화가 독립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업자본의 지원 없이 만들어진다는 면에서 보면 독립영화의 범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영화를 떠받치는 튼튼한 버팀목이 독립영화라는 사실은 분명한데, 이를 단순히 시장기능에만 맡겨두는 것은 한국영화 전체를 보아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다양한 제작지원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며, 이러한 영화들이 개봉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공적인 영역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독립영화가 가지는 공공적, 공익적 성격이 시장성은 떨어지더라도 자유로운 창작의 골간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30개 가까운 예술영화관이 있다. 이들 영화관은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로 인정된 영화를 연간 219일 이상 상영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국고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영화관이다. 공공적 성격을 가미한 민간극장인데 대구에는 동성아트홀이 있다. ‘워낭소리’를 처음 개봉한 전국의 7개 극장 중 하나도 바로 이곳이다. 물론 단 1명의 관객이 드는 영화도 꾸준히 개봉하는 이곳은 민간이 소유하고 있지만, 분명히 다양한 영화에 대한 선택권을 확장하는 공공적 성격이 강한 곳이다. 필자도 여기에서 지난 6년 간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고 지금까지 1천편 가까운 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개봉해 왔다. ‘워낭소리’가 나오기 전 이미 1천편 가까운 영화들의 개봉이라는 꾸준한 노력이 있었고, ‘워낭소리’는 그 영화들 중 하나일 뿐이고 또 다른 영화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계명대학교의 경우도 바우어관을 증축할 당시 예술영화관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필자도 이 과정에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만약, 그 때 만들어졌더라면 아마 전국 최초이자 학내에서 유럽과 일본의 다양한 예술영화와 한국의 독립영화를 상시적으로 볼 수 있는 명소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예술영화관이 공익적 자본으로 많이 만들어져야 ‘워낭소리’와 같은 다양성영화(예술영화와 독립영화, 한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이 1%가 되지 않는 국가에서 만들어 진 영화 등)가 꽃 필 수 있고 그 자연스런 결과는 제 2, 제 3의 ‘워낭소리’로 이어질 수 있다.

영화는 탄생한 지는 1백년 남짓 되지만, 인류의 정신문화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고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문화와 사고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대중화된 문화상품이다. 현재의 시장구조에서 젊은 세대들이 미국과 한국의 상업영화라는 아주 작은 문화만을 체험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독립영화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국의 독립영화는 매번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이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것은 독립영화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에 대한 선택권을 과감히 주장할 수 있는 국민의 문화적 소양의 향상이 가장 우선적이다. 국민 여러분들이 독립영화를 지켜주어야 건강한 독립영화가 꾸준히 양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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