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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그리스인 조르바


여기 왼쪽 집게손가락 하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손가락을 잃어버렸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도자기 만드는 데 빠졌었지요, 녹로를 돌려야 하잖소, 그런데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는 거요.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상상하기도 끔찍하지요. 이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을 그려본다면, 지금까지 봤던 어떤 피 냄새 진동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왔던 가장 무시무시한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 절대 내 생애에서는 만날 것 같지 않은, 아니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 그런데 그 사람, 알고 보니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라는 거.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바로 조르바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제 친구이자 동료이자 삶의 스승인 조르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방에 틀어박혀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친한 친구가 자기 일을 하겠다고 떠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도 무엇인가를 해야겠다 싶어서요. 생각 끝에 크레타에 가서 광산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크레타에 가려고 배를 기다리던 새벽, 선술집에서 한 노인네를 만났어요. 조르바라고 하더군요. 그는 제 얘기를 듣더니 같이 가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왠지 그가 끌려서 저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참, 다르대요. 제가 목숨보다 아끼는 책들을 죄다 불살라버리라고 하질 않나, 그럼 바보를 면할지도 모른다면서요.

전 제대로 사랑을 해 본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 사람은 결혼을 한 3000번쯤 했다고 그러고. 그런데 이상하죠, 그와 지내면서 전 제 인생 최고의 멘토를 만났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가슴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지요.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예순이 넘었는데도 뭐 하나 가진 것 없는 그는 실패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규정된 틀에 매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할 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도 행복했던 겁니다. 굴러가는 돌멩이를 보며 경이로워하던 그의 눈빛이 선하군요. 그래요. 그는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을 대해요. 매일 처음인 것처럼 아침을 맞는다면 그 아침이 얼마나 신선할 것이며 그 하루는 얼마나 호기심이 넘치겠습니까. 아,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하던 그가 그립네요. 그가 그러더군요.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거라고,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이라고.

어찌 보면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조르바는 그 누구보다 더 ‘인간’답습니다. 사람의 가슴에 상처 내지 말라는 교훈을 가슴에 품고 사니까요. 그와 함께 하는 동안 저는 그 어느 훌륭한 책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세상을, 삶을, 나를 사랑하는 법이요.

그에게 나이란, 정말 숫자일 뿐입니다. 열정, 자유, 분방함. 20대와 어울릴 것 같은 이 단어들이 예순 다섯인 조르바에게도 전혀 낯설지가 않아요.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으로 우울하고 가슴이 먹먹하던 때에 조르바를 만난 게 얼마나 행운인지! 여러분에게 그 행운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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