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회계전문가들은 고리타분하며, 숫자에 집착하고 편협하다고 단정한다. 영화 ‘Untouchable’, ‘Schindler’s List’, 그리고 ‘Producers’에 나오는 회계담당자들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으며, 숫자가 빼곡한 회계장부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일본 드라마 ‘감사법인(監査法人)’에서는 공인회계사들이 똑같이 검은 정장을 입고 책상에 앉아 장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자체는 매우 편협하다. 실제로 회계는 ‘형식보다는 실질(Substance over Form)’ 그리고 ‘중요성(Materiality)’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살펴야 하며, 작은 숫자도 중요하지만 보다 전략적이고 큰 원칙을 중시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회계의 원칙을 잘 파악한 인물과 그렇지 못한 인물들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그 영향을 설명한 책이 Jacob Soll이 지은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정해영 옮김)이다.
“짐이 곧 국가”라고 큰 소리를 친 프랑스의 왕 루이14세는 원래 회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회계기록이 치적 그리고 결점의 외적인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내용을 잘 설명한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회계를 멀리하게 되었고 프랑스 왕정의 재정이 악화되는 것을 감출 수 있었다. 로마의 위대한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경쟁자를 제쳐 권력을 잡고 유지하며 개혁을 실천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회계를 잘 이용한 그의 현명함이 있었다. 르네상스를 후원하고 교황과 황비를 여럿 배출한 메디치 가문은 혁신적인 사고방식으로 현대적인 금융시스템의 기초를 닦았다. 그런데, 가문의 수장들 중에서 회계를 잘 이해하고 이용한 지도자는 가문을 흥하게 하였지만, 회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리한 지도자는 가문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우리나라의 IMF사태와 2000년대 초기에 미국 Wall Street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인간의 탐욕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또는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던 기회는 회계에 있었다. 지도자들이 회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회계를 이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또는 의도적으로 멀리 하였기 때문에 초래된 비극이었다.
이처럼 회계는 국가, 지방정부는 물론 사기업의 실질적인 내용을 잘 설명하고 지도자가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그 결과를 검증하는 도구이다. 즉, 지도자가 자신의 행적을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이 회계인 것이다.
회계는 무조건 어렵거나 일부 전공자만의 것이 아니다. 회계를 잘 이용한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의 차이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잘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을 회계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물론 정치, 경제, 역사 등 다른 전공을 하는 모든 학생들이 한 번 쯤 읽기를 권한다. 또한 지도자의 업적을 선전한 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질적인 내용에 따라 평가하려는 현대사회의 깨어있는 시민(citizen)이 되려는 학생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