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5.0℃
  • 흐림강릉 5.0℃
  • 구름많음서울 5.6℃
  • 흐림대전 6.7℃
  • 흐림대구 6.1℃
  • 구름많음울산 6.1℃
  • 흐림광주 8.4℃
  • 흐림부산 6.6℃
  • 흐림고창 6.1℃
  • 구름조금제주 9.0℃
  • 구름조금강화 1.0℃
  • 흐림보은 5.1℃
  • 흐림금산 5.1℃
  • 흐림강진군 7.0℃
  • 흐림경주시 5.0℃
  • 구름많음거제 6.2℃
기상청 제공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안톤라이저

URL복사

예전에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이라는 책이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되는 부담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겠으나, 이 자리에서는 1001권의 목록에 올라 있던 책 『안톤 라이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학업과 일상에 쫓기는 대학생들의 삶이지만, 나의 삶을 잠시 돌이켜보면 아직은 ‘타불라 라사(tabula rasa)’의 사고체계를 가진 청년의 시절에 읽는 책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본다.

『안톤 라이저』는 안톤이라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전형적인 소시민 출신의 한 소년이 억압적인 환경에 의해 어떻게 기형적으로 왜곡되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고통 받는 한 인간의 내면사를 꾸밈없이 전달하고자 심리소설이라는 틀을 사용하였다. 저자인 모리츠는 안톤을 통해 본인 스스로가 겪은 유년시절의 참혹한 경험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한 인격체가 불우한 가정 및 사회 환경으로 인해 원만한 인격의 형성을 경험하지 못한 채, 병적인 우울증(Hypochondrie)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과정들이 마치 한 편의 임상보고서처럼 매우 세밀하고도 분석적인 태도로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작가의 삶의 고백이기에 묘사된 내용이 매우 신빙성을 지닐 뿐더러, 어떤 점에선 18세기의 유럽문학 중 가장 철저한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심리학자의 분석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주인공 안톤의 시각으로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아픈 체험들을 묘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체험들을 성인이 된 저자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되짚어 보고, 또 고통의 원인들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안톤의 호소가 정당한 항변인지 등을 하나씩 하나씩 분석적으로 조명하고 설명한다.

본 작품은 그 내용이 크게 네 갈래로 나뉘는데, 주인공 안톤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묘사하면서 안톤이, 즉 모리츠 자신이 1) 왜 종교에 대해 불신감을 지니게 되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종교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릇된 종교관이 가져오는 폐해가 무엇인지를 상술하고 있고, 2) 불우하고 궁핍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배움 그 자체를 얼마나 귀하게 평가했고, 또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업을 마치게 되는 경위를 적고 있으며, 3) 자신이 연극에 대해 가졌던 동경심과, 특히 문학이 자신의 유년시절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자세히 적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 본 작품은 교육자였던 모리츠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교사들에게 보내는 교육지침서이다.

끝으로 저자에 대한 소개이다. 모리츠는 1756년 9월 독일 북부의 소도시인 하멜른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라지는 18세기의 사상과 동터오는 19세기의 사상을 한 몸에 간직한 사람이었다. 그의 유년기가 경건주의(Pietismus)로 대변되는 ‘종교적 속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이후 베를린에서 잠시나마 교편을 잡던 시기는 당시 계몽주의의 대표적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종교적 폐쇄성을 벗어나는 인문주의적 시기였고,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미학 강의를 하던 시절은 초기낭만주의 작가들에게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낭만주의 미학의 한 토양을 제공하였다.

관련기사





[1178호 사설] 중독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