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현대의 세익스피어라고 일컬어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희곡작품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솔로몬왕의 판결과 같은 현명한 재판관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원나라의 ‘석필 이야기’를 번안한 작품이다.
코카서스 계곡의 소유권을 가지고 분쟁을 하다가 한 마을 사람이 손님들에게 가수를 초빙해 왔다. 가수는 악사와 함께 작품을 읽어 나가고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연극으로 나타내 보인다.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판소리와 같이 가수와 악사가 대신 주인공의 심경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극 중 극’ 이라는 형태는 소설 속에서만 보아왔던 것인데, 비로소 6장에 가서야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는 이러한 형태의 희곡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구약성서 ‘열왕기’에서 솔로몬왕은 살아있는 아이가 서로 자기자식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자 앞에서 아기를 둘로 갈라 반씩 나누라 명령한다. 이때 솔로몬왕은 살아있는 아기를 상대방 여자에게 넘기라고 말하는 여자가 진짜 어머니라는 명 판결을 내린다. 한편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보면 재판관 아츠닥은 백묵으로 그린 동그라미 안에 들어있는 아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라고 명령한다. 이때 아츠닥은 아이의 고통을 염려하여 팔을 놓아버린 그루쉐가 진짜 어머니라고 판결함으로써 구약성서의 내용과 같은 구성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의 가장 시적이며 서사적인 요소가 담긴 작품으로 ‘극 중 극’의 형식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용을 보자면 계곡에서 양을 치고 있다가 독일군의 침입으로 이주한 갈린스크 농장주민들과 그사이 계곡에 이주하며 개발계획을 세운 로자 룩셈부르크 농장 주민들이 독일군이 패퇴한 뒤 계곡의 소유권 다툼을 벌인다.
소유권은 사회적 관점에서 계곡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데 이것은 백묵원의 재판에서 누가 아이에게 이상적인 어머니인가가 사회적관점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것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솔로몬이 ‘친모’에게 아이를 주었다면, 아츠닥은 ‘친모’에게 주지 않았다. 이것은 아츠닥이 ‘진정한 모성성’에 대해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백묵원의 밖으로 끌어내는 시험을 통해서 진정한 엄마를 판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진짜어머니인 총독부인은 상속재산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그루쉐는 진정한 모성애를 보여 줌으로써 그 시대의 타락한 인간성과 바람직한 인간성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판관 아츠닥은 이 극에서는 법을 위반하는 비도덕적인 재판관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는 법의 위반이 곧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전도된 선악의 논리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혼돈 속에서 이분법적으로 정리되는 상황에서 본서를 통하여 각자의 판단기준과 정체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