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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오랜만에 공기가 맑아 집의 온 창문을 다 열었습니다. 어느새 쌓인 곳곳의 먼지도 털고, 언젠가 마감 세일이라는 말에 혹해 서둘러 집어 들었다 냉장고 한 쪽에서 시들해져가고 있는 음식들도 꺼내 버렸습니다. 물론 수건이며 실내복이며 하는 것들을 몽땅 집어넣어 세탁기도 돌렸습니다. 대충 집안일을 해치우고는 밖으로 나가봅니다. 집에서 나가 조금만 걸어가면 괜찮은 커피숍이 있어요. 마침 토요일이니, 씁쓸하지만 여운 있는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한참을 앉아 있을 요량입니다. 주문을 하고 커피를 받아 의자에 앉으니 휴일을 보내는 즐거움이 이보다 클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를 사며 함께 사게 된 몇 분간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의자를 내 준 커피숍 주인에게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환대받았기 때문일까요?


『사람, 장소, 환대』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신이 머무르는 장소에 따라 그의 정체성이 변화합니다. 물론 그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인간과 다르지요. 사람은 사회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인간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와 주고받는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 어울려 살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됨을 연기하고 수행하여 모욕을 거부하고 자존감을 지켜가니까요. 그러므로 환대는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즉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환대 받음으로써 비로소 사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환대를 받았습니다. 사십여 년 전 그 어느 날 지금은 할머니가 된 나의 젊은 엄마는 제가 누군지도 묻지 않고 환대해 주었거든요. 그리고 오랜 시간 많은 지원을 해 주었죠. 하지만 그녀는 저에게 그간 준 것을 돌려 달라며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내게 준 것을 이미 다 망각해 버렸는지도 몰라요. 노모가 저에게 보내준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와 더불어 ‘복수하지 않는 환대’가 더해진다면 ‘절대적 환대’는 완성됩니다. 이 마지막 항목은 적대적인 상대방에 대해서도 환대가 지속된다는 것인데요.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됨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가고자 했던 그간의 모든 사회운동은 이 ‘절대적 환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하면서 말이지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니 교정엔 새로운 얼굴도 익숙한 얼굴도 가득합니다. 스치는 얼굴들 사이로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나는 너를 환대할 수 있는가? 나는 너에게 환대받고 있는가? 자신을 위해 나서주는 이가 한 사람만 있어도 더 이상 벌거벗은 생명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을 새기며 이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다시 만난 그리고 새로 만난 우리 학생 여러분, 여러분을 환대합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서로의 사람됨을 지지하며, 그리고 또 한 계절을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 『사람, 장소, 환대』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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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지금, 굳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 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