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을 때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명저 ‘총, 균, 쇠’를 떠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여 년 전,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6백60여 페이지의 방대하고 육중한 이 책을 보름을 넘겨 독파했을 때 그 만족감은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한마디로 감동과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지역적으로 위대한 발상지나 그 이동과 인종주의적인 이론들로 가득했지만 ‘총, 균, 쇠’는 달랐다.
우선 이 책은 1만3천 년 인류역사의 기원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풍부한 자료와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엮어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유전학, 병리학, 생태지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진화생물학, 고고학 등 온갖 학문들을 동원해 인류 발전의 속도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지나치게 과학적 이론이나 깊이 있는 생물학 또는 역사와 지리적 상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방대한 양임에도 읽으면서 지루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이 강대한 이웃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독특한 문화, 언어, 민족과 독립을 유지한 이유에 대해 지리적 조건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가 수려한 금수강산과 뚜렷한 사계절 등의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 살게 된 ‘우연’에 국민들의 노력과 열정이 더해져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순신의 거북선이나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반도체산업, 인공지능, 스마트폰 발달 등이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현대 과학의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 사실 이 또한 엄청난 환경의 변화로부터 기인된 결과물들이다. 책의 저자는 환경의 변화가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지구촌 곳곳에 산재한 문명의 불평등 원인까지도 풀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1백68명의 스페인 군사들이 8만 대군의 잉카전사들을 순식간에 패퇴시키는 과정을 그린 부분이다. 총소리와 말 그리고 훗날 밝혀진 천연두 균. 잉카제국의 멸망은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본보기가 되었다. 필자는 지난 10여년 간 달성군 군수직을 수행해오면서 기초단체의 수장으로 각종 현장에서 환경이라는 화두 속에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했었다. 책의 저자처럼 거대한 문명의 흐름을 좇는 일과는 규모나 성격상 판이할지 모르나 ‘환경결정론’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각 대륙의 사람들이 경험한 장기간의 역사가 크게 달라진 까닭은 그 사람들의 타고난 기질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에게 이 말은 굉장한 울림으로 남아 있으며 큰 교훈이 되었다. 이제 환경은 인간사회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