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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영화 ‘봄날은 간다’

좋아하는 한자어(漢字語) 써오기는 제가 교양 한자·한문 강의에서 꼭 한 차례 부여하는 과제입니다. 한자로 이루어진 두 글자 이상의 어휘, 그리고 그 낱말을 고른 까닭 한두 문장을 원고지에 써오면 됩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한자어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지만 반드시 중복되는 낱말들이 있습니다. 그 단어를 고른 학생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요. 그 가운데 곧잘 1위에 오르는 것이 ‘청춘(靑春)’입니다.


청춘을 글자 그대로 풀면 푸른 봄날. 학생 여러분들 스스로도 지금 이 시절을 푸른 봄날로 여기기에 이 낱말을 골랐겠지요. 그렇지만 봄이 푸르기만 할까요? 하늘은 푸르지만 그 아래 벚꽃도 피어나고 신록도 돋아나니 홍춘(紅春)이나 녹춘(綠春)은 안 될까요? 실은 청춘이 청춘인 까닭은 오행설(五行說)에서 청색이 봄에 배당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름은 적(赤), 가을은 백(白), 겨울은 흑(黑)입니다. 그러니까 청춘은 그냥 ‘봄’이라는 말이죠. 알고 보면 좀 싱겁지요.


허진호 감독의 2001년 작 ‘봄날은 간다’는 바로 그런 봄을 그린 영화입니다. 나온 지 스무 해가 채 못 되었지만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이미 고전(古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수업에서 영화를 주로 활용하는데요, <봄날은 간다>는 빠뜨리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봄날, 가버린 시간,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따위를 주제로 한 한문 고전과 함께 엮어보기 좋은 작품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청춘, 바로 여러분들의 시절과 그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늦겨울 대숲 속에서 가만한 바람소리를 듣던 남자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함께 봄을 보낸 여자에게 혼잣말처럼 물을 때 그가 입고 있는 건 어느새 엷은 반팔 옷입니다. 남자의 말에 여자는 아무 답이 없고, 여자의 옷자락도 이미 짧아 반소매. 남자의 물음이 여자에게는 어쩌면 이렇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계절이 어떻게 변하니? 봄날이 어떻게 가니? 그러나 갈 것이 가고 변할 것이 변하자는데 우리 달리 무슨 까닭 말할 수 있을까요.


청춘의 들목에서, 시작조차 아니 한 사랑을 앞두고 애잇머리부터 왜 김 빼는 소리를 하냐고요? 모든 것은 봄날처럼 시나브로 흘러가기에, 여러분들의 하루하루와 나날의 희로애락(喜怒哀樂)들이 얼마나 무겁고도 가벼우며 멈춘 듯 지나가버리는지 조금은 알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날은 벌써 이렇게 더워지고 봄날은 문득 가버렸지 않습니까. 싫증도 아니 난 좋은 봄날에, 여름으로 옮아가는 계절을 본다(未厭靑春好, 已觀朱明移)라던 건 일천육백 년 전 쯤 같은 계절을 보내던 시인 사령운(謝靈運)의 말입니다. 봄날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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