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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 해피어(Happ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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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삶의 의미이며 목적이고 인간 존재의 목표이며 이유’라고 하였다. 당신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현재의 나에게,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늘 부족하고 필요한 ‘행복’.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행복해지기를 갈망하는 행복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좋은 대학만 합격하면 모든 것이 다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았지만, 대학입학 후에 우리는 지금까지 그려오던 행복과는 거리가 먼 허무감을 동반한 상실감의 불행을 경험한다. 삶의 목적을 잃고 힘들어하고 방황하다, 또다시 미래의 행복을 위한 취업에 대한 고민으로 지속되는 불행을 경험한다.

행복한 긍정 심리학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저자 탈 벤 사하르(Tal Ben-Shahar)는 행복이란 ‘즐거움과 의미의 포괄적인 경험’이라 정의하며, “내일의 성취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무작정 행복만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쾌락주의에 빠지라는 얘기는 아니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과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 고심하고, 일상의 작은 일들에 감사하는 것,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조금씩 시간을 할애하는 등의 작은 변화로 큰 변화들을 만드는 과정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나의 행복, 나의 생각을 찾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더 많이 신경쓰고 행동하는데, 이는 마치 상대가 무서워서 몸을 크게 부풀려 덩치를 키워보이려는 복어처럼 자신을 위장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행복하거나 혹은 불행한 사람의 유형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행복진단 사분면’을 제시하는데, 그 4가지 유형은 미래의 성공을 위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성취주의자’, 순간의 즐거움만을 좇다 무료함의 늪에 빠지는 ‘쾌락주의자’, 과거의 실패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 행복을 포기한 ‘허무주의자’, 그리고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이익을 모두 누리는 ‘행복주의자’이다. ‘행복진단 사분면’을 통해 우리의 유형을 먼저 진단하고,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이익을 모두 누리는 행복주의자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실천해 볼 수 있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 지속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가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이란 바로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순간순간 즐기며, 현재와 미래가 모두 행복한 행복주의자가 되기 위해 훈련해야한다. 지금 행복해지자. 현재를 이끄는 긍정적 감정인 즐거움과 행복한 인생의 자양분인 삶의 의미를 함께 느끼는 지속적인 행복주의자가 되어야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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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8호 사설] 중독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