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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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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환경적 조건에서 성장한다. 유복하지만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성장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환경 속에서 세상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도 있고 무엇 하나 여유로울 것 없는 상황에서 세상을 원망할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왔고 서로 다른 조건 속에 서있다. 그럼에도 타인이 정한 잣대에 맞추어 세상을 보거나 자신의 경험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화 공동체 간의 극단적인 대립은 이처럼 기존의 지식체계 혹은 특수한 경험만을 강조하여 문제를 판단하기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듯 반영한다. 아마 이 소설을 읽진 않았더라도 총 12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의 제목이나 ‘난쏘공’이란 말을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전체 내용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이란 판자촌에 사는 난쟁이 가족의 행복하지 못한 삶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경제 계층과 문화 공동체를 대변하는 젊은 인물들의 생각·경험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 인물의 층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교차시킨 몽타주 효과는 인물의 내면과 현실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점을 교차시키는 글

 쓰기 방식과 중첩된다. 즉 소설의 형식과 내용이 상호적으로 반영하며 우리의 현실을 이중적으로 가리킨다. 

 

이처럼 실존할 법한 인물들의 시선 및 그에 내재한 사회적 문제는 1970년대 중후반에 쓰인 것이란 사실이 망각될 정도로 우리의 일상을 연상시킨다. 공동체 간에 서로 배척하고 고립된 채 화합하지 못하는 오늘에 대한 대안적 사고를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각각의 경제·문화계층 속 인물의 시선에 공감하면서도 문제적인 지점 또한 동시에 비추어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첫 에피소드의 주제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 사회가 이쪽과 저쪽으로 양분된 것이 아니란 것을 드러내면서 타인을 공감하기 위한 노력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준다. 
 
쌀쌀해지는 겨울의 초입에서 이 책과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실의 사랑을 놓지 않는 난쟁이의 꿈에 대해 사유해 보기를 진심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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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8호 사설] 중독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