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시네마 2: 시간-이미지』를 탈고 한 후 <리베라시옹>과 인터뷰를 했을 때 일이다. 기자가 들뢰즈에게 “선생님의 영화에 대한 책은 지금까지 저술하신 두 권으로 끝나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들뢰즈는 그렇지 않다라고 하면서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세 번째 책의 내용은 아마 ‘이미지-디지털’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이미지는 디지털 기술과 만나서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고, 철학자의 처지에서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미지를 또 다른 형태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제 입체감을 넘어 오감을 통해 이미지는 그 생존과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고 이는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이 말하는 ‘밈’의 진화라고도 보여 진다.
요즘 화제되고 있는 이미지의 진화적 형태는 3D와 4D라는 입체영상일 것이다. 1833년 영국의 찰스 위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 두 개의 그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입체경을 제작한 것이 입체 원리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입체 영상은 1855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브루스트(David Brewster)가 이론적인 토대를 소개하면서 본격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여러 논의를 반영해 1905년 최초의 흑백 입체영화 ‘나이아가라 폭포’가 만들어졌다.
3D는 아라비아 숫자로 ‘3’과 ‘Dimension’(차원)의 합성어이다. ‘x’, ‘y’, ‘z’ 이루어진 3차원은 ‘x’, ‘y’로만 구성된 2차원과 달리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서 입체감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해당한다. 3D는 컴퓨터 그래픽에 사용되는데, 시각적 효과를 입체감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속의 새가 화면 밖으로 나와 날아다니는 것처럼 만든다. 이는 영화, 게임, 광고, TV, 의료 등에 주로 쓰인다. 4D는 3차원에 한차원이 더해진 것이다. 즉 ‘x’, ‘y’, ‘z’로 구성된 3D에 ‘w’ 축이 있는 것이다. 3차원을 큐브라고 한다면 이것을 뛰어넘는 초입방체(하이퍼큐브)를 4차원이다. 인간이 사는 현실은 3차원이고, 4차원은 이른바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물리학의 공식입장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4차원이나 다른 분야에서 고려하는 4차원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흔히 4차원 세계라는 표현을 통해 4차원을 현실과 별개의 공간으로 여긴다. 그래서 개성이 강하거나 현실을 초월하는 이들을 ‘4차원 소년 혹은 4차원 소녀’라고 말하기도 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세계를 4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상미학에서 많이 거론되는 ‘4D’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나 촉각, 후각, 청각, 미각 등의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테크놀로지를 말한다. 일단 입체안경을 써야하는 것은 3D와 같다. 여기에 관람객이 진동과 경사의 변동을 느낄 수 있도록 의자를 움직이게 하거나 후각이나 촉각에 해당하는 향기나 냄새, 바람이나 습기를 가해준다. 이른바 즉 ‘오감체험’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2009년 1월 CGV 상암에는 ‘4D’ 영화관이 처음 상설되었고 공포영화 <블러디 발렌타인> 상영 시 장면에 따라 의자가 움직이고 살이 타는 냄새도 났다. 영화 <해운대>의 쓰나미 장면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천둥이 칠 때는 특수 조명이 작동했다. 4D 영화에서 이는 스트로브(Strobe) 장비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 <아바타>도 4D 플렉스를 통해 오감체험을 제공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의 대규모 전투이다. ‘에이와’ 나무를 둘러싼 지구인 용병들과 나비족 전투부대 사이의 전투가 벌어질 때면 관람객의 좌석이 전후는 물론 상하 좌우로 흔들렸다. 물론 폭탄이 터지거나 타격을 받을 때도 의자가 같이 흔들린다. 이는 셰이커(Shaker)기능 덕분에 가능해졌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총알과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라는 것을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화약 냄새를 얹기도 했다.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로 들어간 상태에서 발가락으로 흙을 휘저을 때는 꽃향기가 극장 안에 뿜어졌다. 극장 안에 설치된 ‘센트머신’(Scent Machine)은 6가지 향기를 낼 수 있었다. 판도라 행성의 신비한 느낌을 배가하기 위해 숲속의 향기는 물론 레이저 광선을 사용하기도 했다. 주인공이 ‘이크란’을 타고 비행을 하거나 야생동물을 잘 길들여진 말처럼 타고 갈 때는 바람이 뿜어져서 마치 실제로 숲과 하늘 속에서 같이 날아가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행체가 착륙할 때 의자에 떨림을 주는 것은 기본이다. 제이크의 격투 장면에서는 ‘티클러’(Tickler) 효과가 사용되었다. 좌석에서 관람객의 등을 실체로 치면서 주인공이 타격을 받을 때 갖는 느낌을 공유하게 했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다른 영화에 비해 이런 4D효과가 많이 등장한 편이었다. 5분에 한번 꼴로 이런 효과가 나왔는데, 2시간 42분 동안 30회 이상의 4D 효과가 사용되었다.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에서 주인공 트레버가 석탄 운반차를 타자 관객 의자에 진동이 일었다. 또한 공룡이 침을 흘리는 장면에서 실제로 극장 안에 물이 분사되었다. 번개 치는 장면이 등장할 때면 마치 극장 안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시각 효과를 냈다. 4D영상을 사용하는 테마파크 놀이기구도 영화와 밀접하다. <캐리비안의 해적>도 처음엔 놀이기구였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다른 면을 보인다. 4D 게임에서는 시간의 변화에 따른 시각적 화면이 바뀐다. 사실 현실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햇빛이 다르게 투영되므로 사물의 모습을 같지 않다. 게임의 4D는 주인공이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면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스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핵심은 순식간에 변화가 반영되는 시각적인 효과다. 과정적인 텍스처 렌더링(Processing Texture Rendering)이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이는 그래픽과 영상의 구성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사물과 대상의 질감이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을 지 개발자가 미리 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피부의 노화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미리 그 과정에 맞는 그래픽을 정해야 실감나는 영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2D를 포함해 대개 3차원의 영상미학까지도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4D하면 우리는 흔히 영화나 게임만을 생각하지만 의료, 건축, 토목, 박물관 등에서 다양하게 사용된다. 각종 특수 박물관의 영상도 4D로 제작되고, 국내에서도 실제로 여러 곳에서 적극 도입하고 있다. 4D는 의료분야나 건축에서는 게임과 같이 시간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의료분야에서는 약물을 투여했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체의 변화가 움직이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마치 신체 안에 들어와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현재로서는 인간이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 4D 초음파영상 진단기는 기존의 3D진단기와는 달리 태안의 태동을 실시간으로 옆에서 지켜보듯이 비춘다. 건축에서는 일정에 따라 어떻게 건물이 사실감 있게 공정이 이루어지는지 동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물론 그 가운데 냄새나 진동, 습기, 바람 등의 요소가 가미된다면 오감을 통해 여실히 현장과 상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상에서 4D는 영화의 오락적 기능이 배가되어 극장이 오감만족의 체험적 공간으로 확대 진화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분야에서도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4D 테크놀로지가 빈부의 격차를 확장하거나 각종 서비스의 향유의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사용될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