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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줄 알아야”

1. 최근 MB의 독도방문과 8.15경축사 일왕 사죄 요구, 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박종우 선수의 독도세레머니, 중국측 운동가의 댜오위다오섬(=일본명 센카쿠열도) 상륙사건 등으로 인해 일본의 독도 대응은 전례 없이 공격적이고 전방위적인 형태로 전개하고 있다. 영유권문제로 불거진 이번 사태는 심지어 위안부 강제동원과 군관의 관여여부 등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 일본 정부 각료의 발언으로까지 치닫고 있어 한일관계는 국교정상화 이후 초유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면 독도 영유권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학술적 가치는 어떠한 것이며 독도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독도를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왜 어떻게 우리 땅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고 예로부터 우리 땅이기 때문에 우리 땅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다. 일본인 혹은 다른 외국인에게 독도가 우리 영토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무조건 우리 땅이라고 우격다짐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그 근거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독도는 분쟁지역이 아니며 독도는 명백히 한국 영토이므로 영유권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공식적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과거 60년간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고자 갖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러일전쟁 한창 진행 중이던 1905년에 쟁쟁을 위한 전략적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독도를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했지만, 해방 후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의 땅으로 돌아왔다. 그 독도 편입의 100년을 맞은 2005년을 기점으로 일본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다케시마문제연구회>란 것을 만들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논리 개발을 해왔다. 여기서 얻어진 연구결과를 토대로 2008년 일본 외무성은 독도 홍보용 팸플릿을 10개국어로 만들어 배포하는 한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하여 국제사회에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문부과학기술성도 초중고 교과서에서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명시하여 독도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도 한국의 주장과 거의 똑같이 “독도(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이를 불법점거하고 있으며 일본은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의해오고 있으나 한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한국의 독도에 관한 사료 중 간극과 허점을 비집고 들어와서 교묘하게 논리를 조작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것은 독도의 가치 때문이다.

독도라는 섬 자체는 나무가 자라지 않은 바위섬으로 별반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도라는 섬의 위치는 주변의 넓은 어장과 해양을 아울러 지니기에 일본이 자꾸 ‘분쟁지역화’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강치와 전복이라는 경제적 가치로 독도에 접근하다가 그 후 러일전쟁에서는 망루설치라는 전략적 가치로 이용했다.

해방 후에는 독도주변 해역의 어족자원 때문에 영유권 주장을 했었지만 1980년대 이후는 독도 울릉도 주변 해역의 지하에 매장된 광물자원 하이드레이트(메탄가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조금이라도 바다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분쟁지역화’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 일본의 독도에 대한 ‘분쟁지역화’는 독도 해저에 매장된 자원의 경제적 가치에 있는 것이다.

2. 독도에 대한 학술적 가치는 주로 과학적 가치에 국한된다. 해양학적 가치, 지질학적 가치, 생태계적 가치 등을 들 수가 있다. 첫째, 해양학적 가치는 독도가 북한한류와 쓰시마난류가 교차하는 황금어장이고 이 해류의 흐름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독도가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이다. 이러한 해류조사는 어민들과 항해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여 조난사고 등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수 있고, 해양오염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오염물질의 확산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하여 최근 독도 해양과학기지 건설이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시설의 설치는 오히려 해양오염을 발생시킬 염려가 있기도 하지만 실시간 기상 및 해양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하여 해양 기상 어장 예보의 적중률을 높이는 등 많은 공익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독도해저의 하이드레이트 자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원이다.

둘째, 독도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암석학의 보고라는 지질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지질학적으로는 120만 년 전에 생성된 제주도, 250만 년 전에 생성된 울릉도보다 훨씬 더 오래된 450만 년 전인 신생대 3기 플라이오세 기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독도와 같이 해저산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매우 드물며, 또한 오랜 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 작용을 거치면서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지질유적이다.

셋째, 독도는 해양성 기후이기 때문에 다른 섬과는 달리 독특한 생태계적 가치를 지닌 섬이다. 과거에는 강치(가제)가 많이 서식하여 가지도라고도 불리웠고, 예전에는 섬에 소나무가 서식한다 하여 일본에서는 송도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강치도 소나무도 멸절이 되었고 목본성으로 사철나무를 제외하면 대개 초본성 식물들이 서시고하고 있다.

독도는 연중 무상지대(1년중 서리가 내리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울릉도와 함께 그 식생이 특이하다. 해국, 섬장대, 번행초, 괭이갈매기, 바다제비 등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잇다. 최근 울릉도 독도 식물의 유전자 분석에서 독도의 해국이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해국의 원종이라는 것과 독도의 사철나무가 제주도와 거문도에서 건너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육상생물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독도의 해양생물에 관해서도 최근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독도 대륙붕 부근은 격리되어 있어 해양생물자원의 보고라고 할 만치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3. 독도문제를 두고 언제까지나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독도 특강을 나가면서 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3가지로 요약해서 가르쳐주곤 한다. 어떤 외국인 또는 일본인 친구와 독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적어도 이 세 가지 사실로써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울릉도에서 독도는 가시거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고려사>나 <동국문헌비고>등 역사적 기록에서도, ‘동해에 두 섬이 있는데, 이 두 섬은 서로 멀지 않아 바람불고 맑은 날이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불과 87km인데 일본의 가장 가까운 섬 오키에서는 160km로 배를 타고 100km나 와야지 독도를 볼 수 있는 거리이다.

이론적으로는 울릉도의 80m이상의 지점에서 독도가 관측된다고 한다. 그러나 예전 울릉도 주민들은 가끔 도동항에서도 독도를 보았다고 한다. 몇 해 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울릉도에서 독도를 며칠 관측되는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결과에 의하면 1년간 35일 정도 울릉도에서 독도를 볼 수 있다. 대개 비온 다음날이나 옛기록처럼 바람 부는 청명한 날에 독도가 관측되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울릉도 주민들이 눈앞에 보이는 섬 독도를 그들의 생활공간으로 삼았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울릉도민은 물론 멀리 제주도나 남도 지방의 어민들이 과거에 황금어장인 울릉도로 출어를 많이 했었다고 한다. 이들도 독도로 출어를 하였던 것이다. 이들과 울릉도 주민이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다는 것은 곧 울릉도의 관할구역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독도의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인지했느냐는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기록에서 독도가 우산도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이다. 그 이전부터 이미 독도를 인지하고 있었을지라도 역사기록에서 이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일본의 고문서에서는 사이토 호센이 편찬한 <은주시청합기>(1667)에서 송도(松島, 마츠시마)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즉 독도에 대한 역사적 인지가 우리나라의 기록이 적어도 213년 앞선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은주시청합기>에서는 일본의 서북한계를 이 오키섬(隱岐島)까지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오키섬보다 서북에 있는 독도는 일본의 영역에서 제외하고 잇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셋째, 일본 메이지정부의 공식문서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역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선의 영토임을 천명한 사실이다. 근대국가로 발돋움을 한 일본 메이지정부의 내무성은 지적편찬을 하면서 시마네현의 서북쪽 해상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현 영역에 포함시킬 것인지 어떤지를 검토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시마네현에 문의하여 각종 사료와 관계서류 등을 조사하였다.

당시는 제국주의의 대륙진출을 위해 울릉도를 탈취하고자 <죽도개척원>, <송도개척원> 등이 분분하게 등장하던 시기였다. 시마네현과 정부의 자료들을 내무성, 외무성 등이 검토하였고 최종적으로 당시 최고의 정치결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이 ‘죽도외일도(竹島外一島)’ 즉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판도(영역)이 아니므로 주의하라는 태정관지령을 내려서 영역문제에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일본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했던 결정적인 사료이다.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오히려 일본의 ‘독도 분쟁지역화’의도에 부채질을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장기적 로드맵과 전략과 전술 그리고 목표는 명확히 정립하고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는지 솔직히 걱정과 의구심이 앞선다. 대다수의 국민들처럼 감정적 대응이나 정략적 수단으로 독도에 대응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를 명확히 설명할 줄 알아야 하고, 정부는 일본의 치밀한 도발에 대해 철저한 로드맵과 대응전략을 가져야 한다. 또한 연구자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왜곡논리와 허구성을 사료를 통해 치밀하게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독도에 관한 많은 일본측 자료들을 새로 발굴하고 이를 꼼꼼히 분석하여 일본의 논리를 무력화해야만 독도에 대한 주권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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