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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석 ‘라피스 라줄리’, 그 사연과 의미

본교 창립 115주년을 기념하여

돌은 돌이 아니다. 돌은 돌이다. 돌 장난? No. 나이가 드니 돌에 대한 생각이 예사롭지 않다. 언제 가부터 캠퍼스를 걸으면 돌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보슬비라도 내리면 돌의 눈길이 무척이나 정답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철따라 변신하는 수목의 색채유희에 감탄하느라 바위는 존재조차 몰랐는데, 이제는 사시사철 그대로인 바위가 그리 좋을 수가 없다. 물론 바위는 그대로이지 않다. 나날이 다르다. 브르통이 말한 것처럼 귀를 잘 기울이면 돌의 말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돌은 38억년에 가깝다고 하니 돌의 말을 이해하면 지구의 신비가 풀릴지도 모른다. 일찍이 예수님은, 인간이 진리에 무감하면 돌이 소리칠 것이라고 했다(눅19).

성서 캠퍼스에는 돌(바위)이 참 많다. 새로 갖다 놓은 것도 있지만 있어도 보지 못한 것이 많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이 있어야 인식이 되는 법이다. 캠퍼스에 바위를 세워둔 이유가 뭘까? 일단 조경을 위해서인 것 같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드넓은 캠퍼스를 장식하는데, 웅숭깊은 정취를 느낀다. 나는 좀 더 다른 함의도 읽는다. 가볍고 조급한 이 시대의 지성을 눌러 잡아주는 문진의 뜻을 말이다. 바람에 날리는 종이를 묵직하게 잡아주는 것이 문진(文鎭)이라면, 오늘날의 캠퍼스에 지성의 문진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은 철따라 유행 따라 변화무쌍한 세상과 달리 시류에 초연한 묵직한 맛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유치환은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는 바위라고 했다.

실로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군데군데 놓여 있는 돌을 보는 감동이 적지 않다. 그런데 지난 5월에는 아주 특별한 돌 하나가 들어왔다. 본관 앞 잔디밭에 세운 커다란 청금석을 말한다. 청금석(靑金石), 서양 사람들은 lapis lazuli라고 하는데 lapis 라틴어이고 lazuli는 페르시아 어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라피스 라줄리’라고 쓰는 경우가 많은바, 대체로 보석이나 장신구로서 청색의 돌을 말한다.

본관 앞에 세운 돌은 라피스 라줄리 원석으로서 청색에 금색이 많이 섞여있다. 단순히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신비한 무늬를 띄고 있다. 자세히 보면 우주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 바퀴 돌며 바라보면 보는 각도에 따라 형상이 가지각색이다. 높이 2.5m에 폭 1.6m, 무게 6.7t의 돌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산인데,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의 석재상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얼마인지는 모르나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펼쳐 구입한 것이다. 계명대가 캠퍼스에 저 청금석을 세운 뜻은 뭘까? 대학이 교석을 세우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니지만 돌중에도 청금석을 택한 이유가 뭘까? 학교 홈페이지의 자료를 보면 몇 가지 이유가 나와 있다. 청금석은 밤하늘을 닮았다고 생각하여 일찍부터 신성한 돌로 인식되었는데, 특히 청색은 지혜를 상징했다. 이 상징성이 계명대학교의 교육이념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맥락도 밝혀놓았는데, 모세가 십계를 새긴 돌이 청금석이다. 역사적으로 청금석의 청색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정신적 의지를 북돋운다고 하여 예술가들에게도 사랑을 받아 왔다. 계명석 라피스 라줄리는 금색이 많이 섞여 있는데, 만일 전체가 파란색이면 엄청나게 비싼 보석이 된다. 밖에 세워 둘 수도 없을 것이다. 요즘 좀 떨어져서 보면 녹색 잔디를 바탕으로 파란색과 금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파랑은 하늘, 녹색은 자연, 금색은 인간, 천지인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라피스 라줄리는 세계의 문화사 속에 자주 등장한다. 1922년에 발굴되어 일약 세계적인 문화재가 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가 라피스 라줄리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청색의 라피스 라줄리로 둘레를 친 눈의 아름다움과 신비는 지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부활과 신성에 대한 동경이 라피스 라줄리에 현현되어 있다. 라피스 라줄리는 문학과도 깊은 관계가 깊다.

19세기 중엽에 발굴되어 고고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수메르의 유적은 문학계에는 더 큰 파란이었다. 여기서 발견된 「길가메쉬 서사」 때문이다. 「길가메쉬 서사」는 호머의 작품이나 창세기보다 1000년 이상 앞서 기록된 인류 最古의 문학 텍스트이다. 내용적으로도 문학적 의의가 지대하다. 주인공 길가메쉬는 기원전 2500년경에 산 우륵의 왕이었다. 그는 친구(Enkidu)의 죽음을 보고 불사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불로초까지 획득하지만 맛도 보기 전에 뱀에게 빼앗기고, 결국 인간의 유한성 앞에 무릎을 꿇는다. 대신에 이름만이라도 영원히 남기겠노라고 자신의 행적을 돌에 자세히 기록하여 보관했다. 그 돌이 다름 아닌 라피스 라줄리였다. 이미 4500년 전에 라피스 라줄리는 미와 신성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는 뜻이다.

계명석 라피스 라줄리, 개별 계명인은 끊임없이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간다. 그러나 계명으로 인해 그들의 이름과 작품은 남을 것이고 또 그로 인해 계명의 이름도 존속할 것이다. 소멸 혹은 죽음을 비극이라고 한다면 이 땅의 누가 비극을 피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비극에 대한 정신적 태도이다.

여기에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가 「라피스 라줄리」란 시를 통해 답을 시도하고 있다. 1936년에 나온 이 4연의 시는 생의 존재론적 비극을 감내하는 방안으로 예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stanza)은 라피스 라줄리에 부조浮彫된 중국 현자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온갖 흥망성쇠의 세월을 깊은 흔적으로 담고 있는 라피스 라줄리 위에 한 폭의 그림이 돋을새김으로 그려져 있다. 현자로 보이는 두 사람의 노인이 오얏 가지가 드리워진 산중턱의 정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세상은 온갖 슬픈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현자는 그 내막을 다 알고 있다. 한 현자가 음악을 부탁하니 현을 타고 구슬픈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노쇠한 현자들의 눈이 기쁨에 반짝인다. 이 변용(transfiguring)의 기쁨이 예이츠가 의도한 ‘비극적 기쁨 tragic gaiety’이다. 여기에 예술의 역설이 있고 미적 창조의 신비가 있다. 또 청(天)과 금(地)의 놀라운 조화가 여기에 있다. 예이츠는 앞서 3연에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것은 무너지고 다시 건설된다. 그리고 다시 건설하는 자는 유쾌하다 구축에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다시 짓는 과정에 인간의 기쁨이 있다.

계명대학교 본부의 뜰에 청금석을 세운 뜻은 계명의 영원한 발전을 소망함에 있을 것이다. 발전은 어떤 정태적(static)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시작하는 열정과 기쁨에 있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저 청금석을 찾아가 바라보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형상을 발견하고 놀란다. 돌을 보며 괄목상대해야한다면 사람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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