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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제 누구를, 어떻게, 부르는가?’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한일 시인 교류회 기조발제문

우리학교 문예창작학과·일본어문학전공 등에서 주최한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한일 시인 교류회-소통과 상생, 매개체로서의 시’가 11월 3일과 5일에 걸쳐 우리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각각 열렸다. 학생들에게 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지난 5일 우리학교에서 기조발제를 한 이하석 시인의 ‘시는 지금 누구를, 어떻게, 부르는가’를 상, 하로 나눠 다루고자 한다.
- 엮은이 말 -

1
소통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최근엔 시단도 불통을 얘기합니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심화로 사회와 사람, 또는 사람들 간의 단절의 벽이 두껍기 때문에 소외의 문제가 심각한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현상일까요? 보다 순수한 문학의 징후로서의 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요즘의 시의 불통은 그보다 더 나간 징후라고 비꼬기도 합니다. 이는 현대 서정시가 자율적이고 절대적인 순수 예술로 자리매김한데서 온 현상일까요? 또는 의미의 형성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실험적인 시인들의 태도 때문에 나타나는 걸까요?

2
요즘 시가 어렵다는 얘기는 특히 젊은 시인들의 언어구사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합니다. 물론 현대문학이 전개되어온 이래 각 세대 간 소통의 단절과 연결이 간단없이 이루어져왔습니다. 30년대에 이상의 시가 난해시의 표본처럼 거론됐고, 70년대에 김춘수가 시어의 자유를 선언해 당혹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김춘수의 시 가운데
날이 저물자
늑골(肋骨)과 늑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고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라는 구절에서 거머리가 우는 소리와 베고니아 꽃잎이 지는 것은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들은 독자성을 가지는 만큼 종래의 소통 구조로 이 구절을 통합적으로 연결하여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해 불가라고 해서 독자들의 수용불가라고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김춘수의 시가 드러내는 이미지는 간명하여 그가 그려내는 특정 풍경을 쉬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의 시가 리듬을 중시하는 것도 소통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시 읽는 즐거움을 주며, 새로운 감흥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어쩌면 김춘수는 자신의 절대적 이미지를 언어의 리듬 위에 얹음으로써 독자와-또는 영적인 세계와-의 색다른 소통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고 그를 만나곤 했던 대학시절에 나는 생각하곤 했습니다. 자신의 시론을 정립하면서 그에 걸맞는 언어의 실험을 해보인 것이며, 그러면서 독자의 눈치를 살핀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러한 작업은 그가 유일했기에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의 시가 어렵다는 것은 과거와 다른 듯합니다. 이는 젊은 세대 대부분의 시들의 특징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래파’로 명명된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시각을 두고 소통의 문제가 범 문단적으로 쟁점화 하는 양상을 빚기도 했습니다. 언어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장한 것은 김춘수 이후 나타난 또 다른 성과처럼 보이지만, 이 시들이 독자와의 관계를 외면하고 시인의 자의식을 과도하게 심화하는 듯 보이면서, 난해성을 지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환상적이고 엽기적인 이미지의 난무와 괴이한 요설들이 시형식의 해체와 함께 나타나는 “자기 표현의 확장에만 머물러 있”(박수연)는 이들 시에 대한 비판도 간단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춘문예나 각종 신인상의 응모작들이 대부분 난해한 언어운용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를 공허하고 활기 잃은 언어라고 말하는 선배시인들의 진단도 있습니다. 신경림은 학교의 그릇된 시 교육을 문제 삼고, 시가 삶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이들 ‘난해한 시들’을 보며 왜 신인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경향을 보일까 의문을 갖습니다. 그들의 시들은 낯선 이미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들 시인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어서 알아듣기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세대인 그들이 스마트폰으로 찾아내는 정보들은 넘치고, 서로 얽히며 확장됩니다. 나는 그들의 시를 통해 그렇게 찾아낸 정보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돌출하며 합방하고 교접하는지를 봅니다. 그들의 그런 현실(또는 현실의 반영)은 놀랍고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과거 이상이나 김춘수의 시의 난해성이 개인의 시적인 이론 추구의 방법이나 취향에 의한 것이었다면(말하자면 다분히 문화적이고 교양적인 접근방식이었다면), 지금 젊은 세대의 시의 난해성은 그들 대부분이 수용하고 있는 집단적인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젊은 세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현안문제의 표출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면에서 그들이 속하거나 맞닥뜨리는 현실의 재현이나 반영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들 시를 두고 시란 시인의 심연에서 솟구치는 언어인 만큼 그걸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일반적인 말을 갖다 붙이는 것도 머쓱합니다. 다만 과거 이상이나 김춘수는 물론 80년대 초반의 해체시가 그 다음 세대들에 의해 어느 정도 이해 내지는 너그러이 수용된 것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시도 우리들에게 초면이어서 그렇지, 구면이 되면 달리 이해되거나 수용될 여지가 있다고 자위해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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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