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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정화 관점에서 본 국어순화

민족적 영향을 고려해 합리적인 국어순화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

지난 9월 2일에 국립국어원에서 외래어인 ‘싱크홀’을 ‘함몰구멍’ 혹은 ‘땅꺼짐’으로 순화하여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화제가 된 사건이어서인지 주변 학생들이 이 순화어에 관심을 갖는 듯하여 관련 전공자로서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 한글날은 좀 특별하다. 1991년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된 후 22년 만에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고, 이 후 첫 법정 공휴일로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글 박물관이 지난 10월 9일에 개관한 일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어 순화는 최근에 인터넷 용어라든지 외국어의 범람으로 언론에서 자주 논란의 주제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 달리 판단할 수도 있지만 차자표기나 훈민정음도 한자 표기를 벗어나 우리 문자 표기를 지향했다는 측면에서는 순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뒤에 선조가 일본말의 사용을 금지하도록 명한 것도 국화 순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국어 순화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어학자 사이에서는 국어 순화의 개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어 순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순화의 적용 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일본어나 일본어 투를 몰아내고 우리말로 순화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한자어의 사용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한글 전용이냐 국학 혼용이냐 하는 문제까지 논란이 벌어졌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외래어의 차용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이제 새로운 국어 순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08년부터 국립국어원에서 순화어 공모와 같은 방법으로 국어 순화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치고는 있지만 순화어 선정 대상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국어 순화는 언어 정화의 관점과 언어 표현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언어 정화는 시대의 인식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언어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언어가 한 나라의 민족성과 전통 문화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이 인식되면서 언어는 보존의 대상이며 발전 계승해야 할 유산이 된 것이다. 한편, 언어 표현 관점에서는 언어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래어냐 한자어냐 식의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언어 규범과 문장 표현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글에서는 두 관점 중에서 언어 정화 관점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더 이어가고자 한다.

언어 정화 관점에서 국어 순화의 가장 큰 사건은 훈민정음 창제이다. 고된 한국사만큼이나 국어도 고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 초 세종대왕은 한문이 우리 민족의 사상과 문화, 지혜를 담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무엇보다 일반 백성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대왕은 우리 문자를 창제하였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시대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대변혁 중에 하나였다. 훈민정음은 새 시대에 백성을 참여하게 할 것이냐 하는 새로운 정치의 쟁점을 세상에 던진 것이다. 윤리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실체를 추구하는 그래서 세속적이라고 생각했던 일반 백성이 새 시대에 참여하는 것은 고귀함을 기초로 하는 옛 세력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반 백성은 언어의 주체로서 살아가기보다는 말없이 뒤편에서 따라오는 것이 이치(理致)라고 생각한 이들에게 백성의 언어는 당치도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한자를 훈민정음으로 순화하려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국어 순화는 1504년 연산군의 언문(諺文) 금지 명령에도 서서히 백성에게 뿌리박히기 시작했다. 훈민정음은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넓은 세상을 담아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살아 움직이는 모양을 아주 생생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혀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차츰차츰 한자 중심의 문자 생활에서 훈민정음 중심, 즉 우리 언어(말과 글) 중심의 문자 생활로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개화기 이후 국어 순화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한자가 일반 사람들의 눈과 귀, 입을 차단하고 있었으나 주시경이 주도하여 1896년 독립신문으로부터 문어체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문어체와 구어체를 일치하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1938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나라 잃은 슬픔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 국어 순화는 어려운 한자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에서 일본어나 일본어 투를 몰아내고 고유한 한글을 사용하자는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국어 순화에 크게 호응하면서 국어 순화는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뒤를 이어 계속해서 국어 순화는 정부에서 주요 정책으로 삼아 진행해 왔다. 최근 2004년 이후부터는 국립국어원에서 동아일보, 동아닷컴, 케이티(KT)문화재단 등과 함께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www.malteo.net)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국어 순화어 대상을 공개하고 일반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여 순화어를 공모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사업의 성과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다소 순화어 혹은 고유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사람들을 다시 우리 언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국어 순화를 언어 정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초기 국어 순화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매우 절박한 일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고 세련되게 표현할 방도가 없어서 사회의 뒤에서 좇아가기만 했던 백성을 사회의 중심으로 이끌어내었으며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국어 순화를 통해서 쓰다듬고 다독여 다시 나라를 세우는 일에 힘을 쏟게 하였다. 앞으로도 우리 국어는 많은 사람들의 힘이 되어 줄 뿐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나타내줄 것이다. 새삼 주시경 선생님이 말씀하신 “국어는 우리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생각난다.

국어 순화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할 것이냐는 문제, 국어 순화의 대상 문제, 국어 순화의 방법에 대한 문제 등은 여전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논의하여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어 순화가 우리 민족과 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국어 순화의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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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