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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제 누구를, 어떻게 부르는가?’ (하)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한일 시인 교류회 기조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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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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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의 이해난망인 시들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이대로는 앞으로 우리 시가 보다 심각한 불화 또는 불통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우려되는 것은 시가 독자들로부터 대부분 유리된 채 시인들끼리 주고받는 말들이 되어버리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문인지 젊은 세대의 시에 대한 비평가들의 지적이 만만찮습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토의적인 산문 문체를 시에 직접 도입”(조창환)함으로써 시가 독자들에게 지루해졌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대상을 비틀고 이야기에 대한 일관성을 파괴하면서 1인칭 화자에 대해 끝없이 불신을 드러낸다”며, “형식적으로는 산문화의 경향이, 내용적으로는 사적이며 환상적인 현실”이 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우대식)는 지적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문학은 문학으로서 가능한 소통의 공동체를 위해 기능해야(박수연)한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가 전위성을 강조하지만, 삶 자체를 방기해선 안 되며, 갱신의 삶을 위한 차원에서 자기의 미적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고명철)는 말도 나옵니다. 모두 소통 부재의 시적 현실에 대한 조심스러운 비판의 말들입니다. 시란 ‘시인-시-독자’의 소통구조임을 간과해선 안 되며, 시의 언어도 결국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면서, 그것은 ‘나 자신에 고립된 나’로 결박된 상태를 지양하고, ‘타자를 향해 열린 나’로 나아갈(하상일) 때 가능해진다고 강조되기도 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시의 난해성 시비는 우리 문학사에서 되풀이되어온 것이라는 점에서,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들에 대해, 우리 시의 새로운 기운을 생동케 하는 한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의 문제는 적극적으로 껴안아야 할 문화양상이며, 이는 이후 세대들에게서 펼쳐질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시는 “시는 단순한 사상(事象)을 메타포로 바꾸고 신비롭게 하며, 많은 것을 기교적으로 말하거나 침묵함으로써 시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독자가 텍스트에 대해 생각하며 오래 머물도록 하”(하인츠 슬라퍼)는 것이라는 점을 보다 더 의미 있고 폭넓게 수용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시가 전 세대를 비판 또는 부정하면서 출발했듯, 이들의 다음 세대에 의해 이들의 시가 극복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또한 이들의 시는, 이해되지 않고 소통불능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들의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그 현실이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편한 소통의 사회로 나아가지 않으리라는 전망과 함께, “초현실주의, 언어의 불확정성, 언어에 작용하는 사회 및 정치에의 압력에 대한 의식, 장르 간 융합, 파편화, 심지어 언어의 지시성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양균원)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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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시들이 보여주는 소통부재의 논의는 신-구세대 간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그리하여 그것이 문단 전반적인 소통 부재의 문제로 불거진다는 우려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문학 생산 체계가 과거와 다르고, 문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리고 소수 문단의 집단화가 공고해짐으로써 전체적인 문단 질서는 점점 더 희석되고 분열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많은 문인들이 양산되고, 젊은 세대와 그 바로 앞 세대 간의 선후배 의식의 교감도 거의 없어진 듯합니다. 각 대학의 문예창작학과, 많은 시인교실들, 수백 개의 문학잡지에서 해마다 배출하는 신인들도 엄청납니다. 그들의 문학교육은 우리 문학사의 전체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글 쓰는 기술에만 치중됩니다. 신-구세대 간 소통을 도외시하기에 이들은 등단해도 자기네들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달리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일상화에 따른 표현 매체의 변화로 인한 문학 장르의 새로운 대두와 표현양식이 훨씬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런 점은 그전 세대와의 불통과 몰이해의 간극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제기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움직임은 소통 부재의 문제를 심화시키겠지만, 한편으로는 문학의 다양한 시각과 활동양상을 불 지피면서 새로운 문학 활동 또는 문단 구조의 양상으로 바뀌어 갈 것이란 기대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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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우리 문학의 소통문제를 우려하고 기대하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한 듯합니다. 기실 그 이상 뭘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문득 몽고 시인 바오긴 락그와수렌의 산과의 대화 중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시는 옛것일 수 있죠. 그러나 시인은 옛사람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죽고, 시인은 태어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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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8호 사설] 중독을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 제목을 패러디해 여러분께 던진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난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맞이한 신학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씩 세상을 약간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진 않을까? 노자의 도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구가 있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치가, 기업가, 의료인, 학자들은 마치 자신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반 시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 양 주장하면서 다른 이의 견해를 무시하곤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근로자를 선호하고, 피고용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로 노동자를 선호한다.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사람인 양 근로자와 노동자를 외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하는 노자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앞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를 따르고 있다고 인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