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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역사인식과 세계사적 정화이념

왜 역사를 철학적으로 인식해야하는가


●목요철학 인문포럼 600회 발제문

역사학이란 역사에 내재하는 개개의 사건을 체계적으로 고찰하여 전체 역사 안에서 일정한 법칙 내지 학적 보편성을 찾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시간과 영원, 자유와 필연, 혹은 특수와 보편 등의 문제와 역사의 논리, 역사의 인식, 혹은 역사의 법칙 등일 수 있다. 이런 역사학은 객관적 사건을 탐구할 수는 있어도 역사 그 자체는 탐구할 수가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철학’은 객관적 역사의 통일성이나 역사의 의미는 물론이고, 역사적 인식이나 역사적 형이상학의 문제까지를 물을 수가 있다. 따라서 역사철학은 역사적 사건 자체에 대한 목적 내지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묻게 된다. 역사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가 혹은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심지어 탈 역사시대에서도 역사의 의미는 있는가 하는 물음들이다.

여기에서는 역사의 의식이 문제가 되고, 그런 역사의식이 인간의 보편적 삶을 촉진시키는가 혹은 어떠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역사의 의미는 인간존재에서 탐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삶에서 탐구되는 인간성의 실현, 즉 인간해방에 있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의식이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로 세계사 전체에 기여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이것은 곧 역사철학이 순수철학이나 형이상학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인류역사 전체행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야스퍼스는 한 사람에게서 출생과 죽음이 있음과 같이 전체인류에게도 처음과 끝으로서 하나의 기원과 하나의 목표가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인간이 역사를 갖기 이전에도 역사는 있었고, 역사를 가진 후에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역사는 인간과 함께 있을 것이라면, 역사 이전의 역사시대는 선사시대이고, 그 후은 역사시대이며, 그리고 미래는 세계사시대 혹은 탈 역사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역사시대보다도 미래의 세계사시대가 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재 역사시대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미래시대에 대한 전망이나, 더욱이 역사적 소망마저 불가능하게 된다.

인간 삶의 흔적이 유물로써 현재까지 남아있는 시기가 실증 사학적으로 5천년에서 6천년 사이(역사시대)이라면, 이 시기를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려는 것이 야스퍼스의 역사철학적 입장이다.

제1단계는 프로메테우스시대로서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인간으로 된 모든 역사의 기초이기는 하지만, 학적으로 역사적 시간을 측정할 수가 없는 시기이고, 제2단계는 고도의 고대문화시대로서 BC 5천년에서 BC 3천년 사이의 이집트의 나일 강, 인도의 인더스 강, 그리고 중국의 황하연안에서 문화의 기틀이 잡힌 시대이며, 3단계는 BC 800~BC 200년, 즉 BC 500년경인 ‘차축시대’에서 인류가 현재까지 살 수 있게 된 인간의 정신적 기반이 마련된 시기로서 중국에서는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등이,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와 붓다가, 이란에서는 조로아스터가, 팔레스타인에서는 엘리야로부터 이사야까지의 예언자들이, 그리스에서는 호머,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혹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각각 다른 공간에서 동일하게 살게 된 시기이다. 그리고 제4단계는 18세기 말엽 이후부터 서양에서 비롯되어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 현대의 과학기술시대로서 세계사를 가능케 한 시기이다.

오늘날 서양의 과학기술시대가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세계전체를 지구촌으로 만들었고, 드디어 우주로 나가는 새 길까지 열어놓았다고 자부하고 있다면, 진정한 세계사시대를 위한 당위성의 논리에서라도 서양은 차축시대의 동양 문화권에서 이미 이루었던 정신문화의 내용 혹은 그 이상을 이제라도 마련해 가야한다.

물론 그 길은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나 갈 수 있는 객관적 자연법칙에서와 같이 마련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의 길이 아니다. 역사시대이후의 차축시대가 정신문화의 새 길을 마련했었다면, 오늘날 과학기술시대는 물질문명의 새 길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진정한 세계사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상호 역방향의 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전자의 차축시대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수신, 또한 철학적 자기반성이 제일우선이었으나, 후자의 과학기술시대에서는 자연의 본질과 현상, 또한 과학적 합법칙성이 제일 우선이었다. 전자에서는 자연에 순응하기 위해 정신과학적 사고가 중요했고, 후자에서는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자연과학적 사고가 중요했다. 따라서 역사인식에서마저 전자에서는 인간인식이 먼저였고, 후자에서는 자연인식이 우선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차축시대의 정신문화가 과학기술시대의 물질문명을 자연과학적 합법칙성의 수리적 논리에 따라 쉽게 이룰 수가 있으나, 그와 반대로 과학기술시대의 물질문명이 차축시대의 정신과학적 독자성으로 인해 그 길을 쉽게 마련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전자인 정신문화는 후자인 물질문명을 그 과학적 방법론의 합리적 논리로서 따라잡을 수가 있으나, 후자인 물질문명은 전자인 정신문화를 그 철학적 자기반성의 본래성으로 인해서 따라잡을 수 있냐는 것은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전자인 ‘인간정신’에게로 다가가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고 심오하나, 후자인 ‘자연현상’에로 다가가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의 합리성 논리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동양 문화권에서는 현실적으로 서양의 자연에 대한 방법론적 인식과 논리적 필연성, 그리고 과학적 보편타당성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이미 차축시대의 중심국이었던 중국과 인도의 문화권은 서양이 수백 년 동안 이룩해 놓은 과학적 보편성의 길로 어렵잖게 들어섰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사시대의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인도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또 한 번의 새로운 세계사시대 형성에 큰 변수로 동양이 등장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이로써 오늘날의 하나의 기술문명에 의한 세계화의 갈등이나, 그런 세계사적 갈등에서 벗어나 모든 인류가 각자의 종교적 영성을 가지고 각자의 생활방식으로 명상하는 신앙다중심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다인종 다민족이 다양한 신앙을 가진다 해도 그들 각자의 종교적 교의를 넘어서는 영성의 종교성은 인류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인간존재의 보편성으로서 비로소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존재의 보편성을 위한 종교성은 지금까지 수천 년의 인류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불교, 유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을 세계사시대의 종교의식, 즉 영성으로 승화시킬 때 가능할 것이다. 이를 영성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세계사적 인식으로서 각기 다른 문화권의 역사에서 인간본래의 역사성으로, 각기 다른 양식의 종교에서 인간본래의 종교적 영성으로, 더욱이 인간에 의한 물적, 심적 또한 영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인류의 참 사랑(평화:paco)으로 나아갈 때 가능할 것이다.

세계사적 영구평화에 대한 염원이 하나의 연대적 인류전체의 이념으로 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이념의 실현을 세계정치가 요구하고 있다면, 그 하나는 그것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 국가중심의 패권주의로 이어져 제국주의적 신 독재정치의 평화안정책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중심의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지면 세계시민적 신 민주정치의 평화안정책일 것이다. 야스퍼스는 전자를 세계제국의 길이라 했고, 후자는 세계질서의 길이라고 했다. 세계제국은 권력을 통해서 만인을 억압하는 강제성의 세계평화를 강요하고, 세계질서는 협상을 통한 공동결의에서 만인이 따르는 강제성 없는 세계평화를 이룩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사람됨’과 ‘사람의 자유함’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삶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할 곳도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유네스코헌장 제1조의 말을 우리는 되새기면서 정치의 세계사에서 문화의 세계사, 즉 평화의 세계사시대를 지향해야 한다면, 현재의 ‘삶’(vivo ergo sum)에서 우리에게 미래는 ‘평화’(paco ergo sum)를 지향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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