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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의 연구기관(4):계명-목요철학원 - 철학의 대중화, 대중의 철학화 이끌어 온 33년간 역사

철학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을 수 있는 강연 마련


1980년대 대학 수업은 교수들의 일방적 강의와 학생들의 집단적 청강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철학과에서조차 교수는 판서하고 학생들은 필기하는 것이 대학 강의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강의실 안은 조용했으며, 엄숙하기까지 했다. 이런 때 미국과 프랑스, 독일과 대만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젊은 계명대 철학과 교수들은 서로의 수업 방식과 강의의 내용이 궁금하여 강의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공개적으로 들어보자는 말을 꺼냈다. 아울러 정규 교과과정 이외의 학문적 주장들을 별도의 시간과 장소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공개강좌를 하고, 자유롭게 토론하자는 중의에 모두가 동의했다.

한 주의 한중간이 수요일이기 때문에 <수요철학세미나>로 하여 진행하고, 시간대는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 동안 발표하고, 나머지 한 시간 동안 토론하기로 정했다. 얼마 후 목요일로 옮겨 <목요철학세미나>(이하 <목철>)가 되었고, 시간대 역시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로 재조정되었다. 당시 대명동 캠퍼스의 시청각실에는 때때로 수백 명의 청중들이 모여들어 복도까지 가득 메우기도 했다. 참으로 열띤 토론의 장이었다.

철학과 자체적으로 시작한 <목철>은 당시 학교와 타 학과에 귀감이 되었다. 1984년 학교에서는 전체 학과에 철학과의 <목철>처럼 좋은 프로그램을 유지하면 계속해서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렇지만 30년 넘게 이어온 것은 <목철>뿐이었다. 오랜 세월 <목철>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철학적 자발성이었다. 처음 시작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다.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목철>은 다시 한 번 변화를 가져왔고, 그것은 ‘철학의 대중화와 대중의 철학화’라는 모토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던의 시기에 대학과 사회,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담장 허물기를 비롯해서 전공 영역의 경계 허물기 등 학문의 경계성마저 사라진 현실에서 <목철>만 대학공간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맨 처음 철학과에서 운영하던 <목철>은 학교의 ‘특성화 지원사업’에 의해 발족된 ‘논리윤리교육센터’ 철학과 주축으로 3년간 운영을 해왔고, 마침 지원사업이 끝나는 시기와 맞물려 학과에서는 구체적인 틀을 세워(<목철>을 3원화하여) 새로운 출발, 즉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 지역사회로 다가가겠다는 요청을 했다. 대학 속에 있으면서 대학을 탈(脫) 하겠다는 요청이었다. 그간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대학 당국의 배려로 2011년에 학교 부속기관인 ‘계명-목요철학원’이 신설되었다. 이로써 <목철>은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목철>을 3원화한다는 것은 ‘청소년’(청소년을 위한 <철학인문학교실>)과 ‘청년’(<목요철학콜로키움>) 그리고 ‘일반인’(<목요철학인문포럼>)을 대상으로 하는 3개 파트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다. 각 프로그램은 확실히 그 성격이 구분된다. 교실붕괴라고 일컬어지는 오늘날 교육환경에서 암담한 청춘을 보내고 있을 청소년들이 자신의 문제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마련한 청소년 인문학 강연 시리즈인 청소년을 위한 <철학인문학교실>, 학내의 구성원들을 상대로 한 체계적인 철학 강의 시리즈인 <목요철학콜로키움> 그리고 일반인을 상대로 한 인문학 강연 시리즈인 <목요철학인문포럼>으로 3원화하였다. 하지만 이 세 영역은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테두리 안에 있다. 청소년이 성숙하여 청년이 되고 청년은 다시 일반인으로 성숙하는 것처럼 청소년 교육을 받은 사람이 청년의 교육을 받고, 청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일반인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평생교육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목철>은 이제 대학이라는 제한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라는 열린 ‘광장’(Forum)으로 나왔다. 대학과 사회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목요철학인문포럼>으로 거듭나 대학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출발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 밖으로 모든 것을 옮겨 가겠다는 선언은 했지만 처음에는 장소 선정, 시간대와 청중의 연령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첫 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최근의 <목철>은 교내에서도 찾는 발걸음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고, 행사를 진행해도 인원을 동원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여러 곳의 장소를 물색하던 중 대구시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 시청각실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2011년 4월 14일은 <목요철학인문포럼>이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날이다. <목철>은 대구 시민의 많은 관심과 호응으로 성황리에 막을 열었다. 첫 강연은 정진홍 교수가 ‘종교 되묻기: 종교는 좋은 것인가?’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후 몇 주가 흘렀을 때는 고정적으로 참석하는 분들이 있었고, 매회 150여석은 채웠다. 심지어 때로는 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몰려와 도서관 측에서 보조의자를 구입해서 비치하기도 했다.

2011년 첫해는 문학·사학·철학·예술 등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기획하였다. 이렇게 전문적인 주제로 기획한 의도는 청중들에게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 주고자함이었다. 전공자마저도 자신의 전공 전반에 대해서 일별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청중들에게 유익한 강연을 제공했다는 자체 평가를 했다. 청중들의 호응도 좋았다. 이에 힘입어 2014년은 1년간 ‘문학’을 주제로 전체 강연을 기획했다. 2013년 전체 강연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의미 전달보다는 사실 전달에만 급급했던 강연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조금씩 보완해 나가고자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 접근한 것, 일회성의 강연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짚을 수 있는 계속적인 강연을 마련하며 청중들 스스로 생각하며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연에 참석하는 청중의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자치회도 조직했다. 이제 시민들은 더이상 수동적으로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로 <목요철학인문포럼>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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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