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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세대 작가들의 교양소설과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시론

젊음의 문제적 형성과 1960년대 교양소설의 출현

● 한국학연구원 학술 발표 논문 초록

한국의 4·19세대 작가들의 1960년대 교양소설에서는 젊음의 역사적 의미, 곧 젊음의 교양체험과 자기형성에 내포된 정치적 무의식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젊음(youth)은 일반적으로 한 인간의 생애 전체를 하나의 기나긴 형성과정으로 간주할 때,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나아가는 심리적·육체적 중간단계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것은 모더니티의 경험과 더불어 전근대적인 입사(initiation)와는 전혀 상이한 방식으로 그 자체로 독특하고도 특수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끊임없는 자기 갱신과 변형, 이동성과 불확실성, 성장과 발전에 대한 욕구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모더니티의 체험은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며 미결정적인 상태로 자기 형성의 도정(道程)에 있는 젊음의 특질이기도 하며, 젊음 그 자체를 인생의 그 어떤 단계보다 문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교양소설(Bildunsroman)은 바로 상징적 형식으로서의 젊음을 포착하고 그것이 모더니티의 경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서사적으로 의미 있게 취급하는 서구소설의 독특한 장르다.

교양소설은 젊음을 보편적인 모더니티의 경험으로 상징화한 소설장르인 것이다. 또한 교양소설이라는 합성어에서 교양(Bildung)이라는 개념에는 젊음의 창조적인 자기형성에 내포된 다양한 특질들, 곧 문제적인 개인성과 내면성에 대한 인준과 보장, 유동성과 불확실성 그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경험과 자기 탐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자아의 자기 발전에 대한 욕구와 좌절, 타자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 개별적으로는 자율을 보장받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그 자율을 인준하고 승인하고 보장받는 우애와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실험, 거기서 비롯되는 욕망과 좌절의 경험 등을 포괄하는 등 종합적이고 전면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젊음의 자기 체험인 교양은 모더니티의 혼란스럽고도 모순된 형성과 해체의 경험에서 결정적인 것이 된다.

교양소설은 근대 서구의 모더니티 체험과 더불어 맨 처음에 유럽에서 형성되고 이후에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어간 소설장르이다. 그런데 개화의 거대한 충격과 조선에 대한 일제의 기나긴 지배에서 해방에 이르는 오래된 질곡, 남북분단과 냉전, 전쟁 등 이른바 식민지배에서 탈식민화의 과정을 오랫동안 겪어온 한국의 모더니티 경험을 염두에 둔다면 이른바 한국형 교양소설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 형성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보통 한국근대최초의 장편소설이라고 불리는 이광수의『무정』(1917)이 젊음에 대한 형성과 지도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모범적인 교육자인 동시에 그 자신이 문제적인 젊음의 담지자인 이형식이라는 주인공의 자기 각성과 모순의 독특한 체험을 통해 한국형 모더니티의 출발선상에 있는 젊음을 형상화한 최초의 교양소설이기도 하다.『무정』과 더불어 출발한 한국형 교양소설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남북분단,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과정, 곧 식민체험에서 탈식민의 체험으로 이동하는 한국형 모더니티의 역사적 이동 경로 속에서 잠시나마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 했다. 젊음은 여전히 문제적이었더라도, 그것을 상징적으로 문제화하는 서사의 시도와 노력은 전반적으로 볼 때 불가피하게 중단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60년의 4.19 혁명과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를 겪고 난 이후의 한국은 바야흐로 정치, 경제, 문화에 이르는 모더니티를 새롭고도 전면적인 충격으로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세대로 출현한 젊은 작가들의 한국형 교양소설은 4.19 혁명과 5.16 쿠데타에서 식민지시대나 해방기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더니티의 전면적인 충격과 체험을 서사의 질료로 삼고 그것을 이전과는 다르고도 새로운 방식으로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시기에 이르러 젊음 그 자체가 식민지의 모더니티 체험 이후로 다시금 문제적인 것이 되며, 그것을 교양소설이라는 서사의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과제를 담당한 작가들은 당시에 작가활동을 시작했던 4.19세대 청년작가들이었다.

최인훈(1936~), 김승옥(1941~), 박태순(1942~), 김원일(1942~), 이동하(1942~)는 모두 4.19 혁명의 직간접적인 충격과 더불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거나 그 당시에 막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작가들이다. 다른 신세대 작가들과 연배 차이가 있고 전후세대로 분류되지만 최인훈은 첫 번째 교양소설인『광장』(1961)의「작가의 말」에서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회색인』(연재 당시에는『회색의 의자』, 1963)도 한국형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실향민인 젊은 주인공의 자기 각성의 형식으로 형상화한 최인훈의 중요한 교양소설이다. 김승옥은 대학 1학년 당시 4.19 혁명을 겪었으며, 그것이 가져다준 원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에서 ‘감수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60년대의 작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김승옥의『환상수첩』(1962)과『내가 훔친 여름』(1967)은 60년대적 모더니티의 경험이 가져다 준 환멸의 체험을 각각 귀향과 여행이라는 경로를 거쳐 참회에 가까운 젊음의 자기고백으로 발산하는 교양소설들이다. 박태순과 김원일, 이동하는 공교롭게도 그들의 등단작이 바로 젊은이의 자기형성을 문제적으로 취급한 교양소설이기도 한 작가들이다.

박태순의『형성』(1966)은 기성의 가치가 제공해주는 삶의 형식을 완강히 거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하는 와중에 자기에 대한 환멸과 자조의 의식을 속물이라는 어휘로 반추하는 젊음을 형상화하는 작가의 데뷔작이다. 김원일과 이동하는 1967년 당시『현대문학』장편소설 신인상에 응모해 각각 가작과 당선작을 수상한 신세대 작가들이었다. 김원일의『어둠의 축제』는 밤이 되면 재즈클럽에 모여들어 불안정하고도 충동적인 젊음의 객기를 발산하고 우정을 나누는 등 젊음의 고뇌와 방황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동하의『우울한 귀향』은 서울의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낀 대학생이 고향으로 내려가 자신의 유년기를 반추하는 소설을 쓰는, 예술가소설의 전신(前身)에 가까운 교양소설이다.

그런데 위의 교양소설들은 제목에서부터도 젊음의 자기기록이라는 이미지가 비교적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광장’은 제목 자체에서 환기되지는 않더라도 젊은 주인공이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삶에 대한 문제적인 도전의식을 펼칠 무대에 대한 중심적인 은유로 제시되어 있다. ‘회색인’은 명시적인 가치체계의 어느 쪽에도 귀속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젊음의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현실의 가치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고독한 자기의식의 결단을 표상하는 어휘이다.

‘환상수첩’은 젊음이 경험한 도시의 대학생활이 하나의 뼈저린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환멸의 기록, 일그러진 자화상에 대한 명명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훔친 여름’에서 젊음이 여행의 형태로 경험한 여름날의 어느 한때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인상은 ‘여름’이라는 어휘가 환기하는 것처럼 청춘의 회고이기도 하다. 그리고 ‘형성’은 교양소설이라는 개념에서 교양(Bildung)이 함축하는 바, 젊음의 자기형성이라는 의미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어둠의 축제’는 낮이라는 자기검열의 현실에서는 발산하기 어려웠던 젊음의 자기 충족적이고도 향락적인 의식(儀式)과 제의(祭儀)를 표상하는 제목이다.

그리고 ‘우울한 귀향’은 서울에서 겪었던 환멸적이고도 우울한 젊음의 경험을 귀향이라는 반성의 여로를 통해 추체험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제목인 것이다. 일련의 소설제목들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환기되는 것처럼, 4.19세대 작가들은 모두 젊음을 문제적인 것으로 부각시키고 이것을 형상화하는데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가들에게 젊음을 그토록 문제적이고 중요하게 형상화하게 된 원인들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들은 특별히 교양소설이라는 형식을 선택해 젊음을 그 자체로 문제적인 것으로 취급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라는 ‘거대한 변환’이 1960년대라는 이 시기의 젊음을 특권화하고 문제적인 것으로 부각시킨 사건들이었기 때문이다.


-미주와 참고문헌-
이 글의 맥락에서 프레드릭 제임슨의 비평 개념인 ‘정치적 무의식’(political unconscious)은 1960년대 4.19세대 작가들의 교양소설, 즉 ‘자기’와 ‘젊음’의 형성과 교양체험의 서사들에서 억압되고 묻힌 무의식으로서의 역사를 텍스트의 표면으로 복원하는 맑스주의적 해석 작업을 위해 동원된다. Fredric Jameson, 1981. “On Interpretation”. The Political Unconscious.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참조.
2) Franco Moretti. 2005.『세상의 이치: 유럽 문화 속의 교양소설』. 성은애 옮김. 문학동네 참조.

그러한 문학적 사례의 하나로 황순원의 장편소설『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를 들 수 있다. 이 소설은 6.25 전쟁에서 살아남은 젊은 제대군인들이 전쟁에 대한 심리적 외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비극적인 과정을 담담하게 재현한다. 6.25전쟁에 대한 심리적 외상은 너무도 직접적이어서 황순원 소설에서 젊음은 재현되자마자 파괴되고 만다. 즉 젊음은 외상을 봉합하는 서사적 통합을 달성하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이에 비해 4.19세대 교양소설 작가들에게 6.25는 황순원 소설과 마찬가지로 재현되지만, 그것은 황순원 소설의 작중인물들이 경험했던 것에 비해서는 전면적이지는 않은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년의 기억에 억눌린 심리적 외상은 ‘원초적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나마 서사를 형성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이 젊은 작가들의 무의식을 다양하게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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