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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 우울증, 우리 부모님이 우울하다

아픈 사람에게 희망과 따뜻한 사랑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처방

우울증은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10명 중 2명은 한 번 걸릴 정도로 매우 흔하다. 우리 주위에는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 삶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라 때로는 소중하게 추구했던 일이 실패하여 실의에 빠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깊은 슬픔에 젖기도 한다. 이러한 인생의 시련기에 우리를 침체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에 빠져들면 슬픔과 좌절감이 밀려와 기분이 까라지고 매사에 흥미와 의욕이 저하되어 사는 재미를 못 느끼며 무기력해진다. 심해지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절망감에 휩싸이게 되고 때로는 자살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증상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못하여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 우울증의 심각성은 우울증을 겪은 사람의 약 15%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자살한 사람들의 약 60~70%는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우울증의 병력이 있어 우울증은 자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데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울증은 모든 연령층에 널리 퍼져 있다. 그중에 대학생을 둔 부모는 대략 40~60세로 중년기에 속할 것이다. 이 나이에 들면 애지중지 키워온 자녀들이 이제는 대학에 들어가거나 결혼을 하여 부모 곁을 떠나거나 독립을 한다. 보통 무거운 짐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대한민국의 부모는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전심전력을 다하므로 허전함과 공허감을 느낄 수 있다. 부모나 자녀가 원하는 대로 대학 진학을 하면 그것을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만 원대로 되지 않았다면 실망감과 허탈감으로 우울한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 생각된다.

자녀가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유학을 떠난다면, 늘 자녀와 북적대며 살아온 부모는 더욱 외로움과 공허함이 크고 우울해질 수 있는데, 이 경우를 새끼를 떠나보낸 어미새의 심정에 비유하여 빈둥지 증후군(empty-nest syndrome)이라 하며 심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고 그만큼 기대를 하여 정작 부모 자신의 삶은 돌보지 않고 소홀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결국 우울증이라는 것은 삶의 의미나 가치를 상실할 때 생길 수 있다. 중년에 접어든 부모는 기력과 의지력이 떨어지는 것을 대처하며 자신을 가꾸고 돌보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생활이 필요하다. 그래야 젊음에 대한 상실감을 이겨내며 우울증도 예방할 수 있다.

중년기 위기의 원인에 대해 ‘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문종원신부 지음)’란 책에 한국적 환경에 맞게 소개한 것을 적어 본다. 첫 번째 원인은 가치관의 위기다. 중년기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다시 던지며 자신의 존재와 외로움을 극도로 예민하게 자각한다. 두 번째 원인은 배우자와의 위기다. 양육기간이 지나면 부부는 멀어지지 쉽다. 친밀감이 줄어들고 그동안 몰랐거나 보지 못했던 배우자의 모습에 새삼 놀라며 낯설어 한다. 이때 결혼생활의 위기가 시작된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 자녀를 키운다고 유보해두었던 부부간의 갈등과 욕구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세 번째 원인은 자녀에 대한 위기다. 중년기 부모는 자녀들이 제각기 행동하거나 함께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고 삶의 목표에 회의를 느낀다. 네 번째 원인은 직업의 위기다. 중년이 되어 일의 속도, 집중력, 체력이 젊은 사람에 비해 떨어지고 경쟁에서 밀리며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신의 위치에 위기의식을 느낀다. 다섯 번째 원인은 노부모와의 위기다. 자식들을 돌보지 않게 되어 자유로움을 느낄 무렵 새로운 의무, 곧 연루한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의무감이 무거워질수록 자유는 상실되고 무언가에 억압되고 통제당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경제적인 면은 물론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를 돌보며 병원에도 모시고 다녀야 한다. 마지막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위기다. 중년기에 숙제 가운데 하나는 젊음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전까지가 외부 지향적이었다면 중년기부터는 내부 지향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처럼 중년기의 변화와 위기를 마주하면서 부모는 혼돈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그동안의 삶의 방식이 무너지고 삶의 형태를 친숙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라는 위협과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중년이 되면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여성은 남성보다 더 이른 시기에 중년을 맞이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두 배 정도 우울증에 잘 걸린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우울증을 일으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외에도 한국의 어머니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압박감을 느끼고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중년기에 근본적으로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고통스러운 인식이다. 중년기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가 죽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 차례가 바로 자신임을 인식한다. 그래서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그의 분석심리치료에서 40세 이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영적 종교적 가치를 높이게 됨을 발견했다.

위와 같은 중년기 위기를 맞이하는 우리 부모는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지나온 삶을 재평가하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재설정한다. 삶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평가를 버리고 나이에 따른 변화 인식을 높이고 발전하도록 노력한다.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 부모는 중년기 위기 속에서 ‘인생의 늪’이라 할 수 있는 우울증을 겪을 수 있지만, 지혜를 발휘하고 부부의 끈끈한 사랑으로 극복하면 더욱 성숙한 삶을 살아갈 것으로 생각된다.

덧붙여 우리 부모의 우울증을 회복하는데 큰 힘이 되는 것이 가족들의 도움이다. 많은 연구에서 우울증 회복에 가족의 정서적 지지, 가족 기능,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성인이 된 자녀들은 얼마든지 우울증을 앓는 부모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는지 몇 가지를 적어 본다.

만약 부모가 우울증 진단을 받으면 전문가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우울증은 치료 효과가 좋고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종종 우울증을 병이라 생각하지 않고 의지 부족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치료를 늦추는 경우가 있다. 또, 우울증의 중요 증상인 피로와 무기력감 때문에 뭐든지 하기 싫어할 수 있는데, 가족들은 핀잔을 주거나 외출을 강요해 부담을 줄 수 있다.

뇌출혈로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이 일상생활을 꾸려 나가지 못하듯이, 우울증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 및 두뇌 활동이 느려져 게을러 보일 뿐이다. 고통과 무력감 속에 있는 부모에게 가족이 관심을 가지고 기꺼이 돕고자 하고, 공감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같이 있어주거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곤경을 이겨내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하다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다. 운동 같은 활동을 권유할 때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도록 독려하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조금씩 즐거움과 성취감을 맛보게 해야 자신감이 살아난다. 아픈 사람이나 가족들이나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가족들은 힘든 터널 뒤에는 반드시 ‘출구’가 있음을 믿고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부모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픈 사람에게 희망과 따뜻한 사랑은 의사의 훌륭한 처방에 버금가는 가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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