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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 그것은 단순한 모방인가? 예술의 본질인가?

극단적 사건 속에 인간의 본질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비극’

본 기사는 우리학교 목요철학원이 주최하는 ‘목요철학인문포럼’ 제725회 ‘예술, 모방과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강연록에서 발췌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 엮은이 말

 


화가의 손놀림을 따라 형태가 그려지고 색이 입혀지면서 세상의 한 조각이 화폭 위로 옮겨오는 일은 신비롭다.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미메시스(mimesis)’라 했다. 미메시스란 진짜를 원본(原本)으로 삼아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미메시스의 성공 여부는 가짜를 얼마나 진짜처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거기에는 일종의 속임수가 들어가야만 한다. 뛰어난 미메시스는 일종의 감쪽같은 사기 행각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음악, 시까지 모든 예술은 실재의 대상과 현실을 가상의 공간 속으로 옮겨놓는 미메시스일 수밖에 없고, 그때 예술은 착각과 혼동을 일으키는 절묘한 속임수의 기술이 된다.


그런데 이를 아주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플라톤이다. 그에게는 그림 속 포도는 물론이고, 화가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쟁반 위의 포도조차 ‘진짜 포도’가 아니다. 현실 속의 포도, 그것은 이상적인 진짜 포도를 흉내 내고 있는, ‘포도’라고 불리는 어떤 것일 뿐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이 삶을 통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육체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감각의 간섭에서 벗어나 오로지 이성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참모습, 본질의 이데아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때 철학자는 이데아의 탐구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순수하게 정화하는 일을 돕지만, 화가는 한갓 현상의 모방을 통해 사람들을 현혹하고 그들의 영혼을 이데아로부터 더욱 더 멀리 떨어뜨린다. 이에 플라톤은 『국가』라는 대화편에서 그는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국가(polis)에서 그림과 조각을 포함한 예술적 미메시스를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쫓겨난 예술가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다.(『정치학』8권, 『시학』4권) 그는 자기의 스승이었던 플라톤과는 달리 미메시스의 가치를 높이 샀다. 그에게 있어 미메시스는 단순히 진리를 왜곡하는 속임수라고만 할 수 없다. 어린 아이들은 인사하는 법, 숟가락질, 젓가락질 등 어른들이 하는 것을 흉내 내면서 세상을 배워 나간다. 난생 처음 하는 것이니 모방과 흉내가 완벽할 리 없지만, 그것은 흠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학습에 도움이 된다. 이처럼 미메시스는 인간 고유의 학습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미메시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긍정적인 시각은 이러한 일상적인 수준에서 예술의 지평으로 옮겨간다.


어차피 원상과 모상, 실재와 작품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플라톤처럼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 미메시스는 왜곡과 속임수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지만, 그 차이와 거리를 긍정적으로 보면 그것은 대상에 있는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알짜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술적인 미메시스란 바로 그 거리의 필터를 이용해 무언가를 걸러내 버리고 특정한 무언가를 뽑아내 응집시키는 정제와 정화의 작업이다. 그렇다면 화가, 작가, 예술가는 무엇을 취사선택하는 것일까? 그들은 대상의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핵심적인 것, 가장 필연적인 것,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것을 뽑아내 화폭 위로 끌어온다. 이때 미메시스는 모방이나 이미테이션의 의미를 넘어서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가려진 대상의 ‘순수한 형상’을 포착하고 화폭 위로 가져와 재현(再現), 즉 ‘리프레젠테이션(representation)’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의 원리 속에서 예술적 모방과 재현의 본질을 밝힌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변치 않는 본질이 있다는 믿음은 예술의 본질을 미메시스로 정의하는 서구다운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그것이 모방이든 재현이든, 미메시스는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으로만 값어치가 매겨질 수 있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고전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배울 점을 제공한다. 고전은 인간의 본성 안에 잠재된 본질을 극단적인 사건 속에서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를 성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의 반열에서 빠지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 비극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이라는 작품 속에는 ‘클뤼타임네스트라’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한 남자와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었는데, 남편의 사촌이 남편을 죽이고 그녀를 취하게 된다. 그녀가 그 새로운 남자와 애틋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그녀는 그 남자에게서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는다. 남편은 가정을 남겨두고 대규모 군사원정의 총사령관이 되어 집을 떠나는데, 이때 그리스 함대의 출항을 위해 딸을 죽여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첫 남편을 죽인 남자가 이제는 사랑하는 딸까지 죽인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서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또한 그 순간 한 남자가 다가와 홀로 남아 배신으로 치를 떨고 있는 그녀를 유혹한다면 그 달콤한 유혹을 견딜 수 있을까? 견딜 수 없다. 아니, 견딜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여러분 속에는 그녀가 있다.


작가 아이스퀼로스는 『아가멤논』을 통해 여러분 안에 감추어져 있던 고통스러운 심경을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이름으로 작품 안에서 해방하려한다. 작품 속 그녀는 여러분의 복잡한 심경의 본질을, 여러 다른 요소들에 의해 억압되고 흐릿하게 가려져 있는 솔직한 욕망의 실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란 진지하며 완결된 일정한 크기를 가진 행위의 모방(mimesis)이다.”라고 했다. 미메시스의 가치를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에서 찾는 것으로 볼 때, 비극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실존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이로써 그리스 비극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극한의 상황까지 밀고 나가 선명하고 깨끗하게 보여줌으로써 잊히지 않고 버려지지 않는, 역사를 뚫고 길이 남는 고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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