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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케이프(mediascapes)와 지역의 탈/구축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지역과 인문학적 실천’ 학술대회 발표원고)

오늘날 한국의 가요시장의 판세는 추억의 ‘가요 top 10’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빌보드 순위’에 있다. 가수 싸이 앞에는 ‘국제가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한국의 팬들이나 시장은 싸이의 빌보드 순위에 촉각을 세웠다. 한국에서 그것도 지방에서 미국 한복판에서 매겨지는 빌보드 순위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미디어의 이동성이 만들어낸 문화의 협상이다.

이러한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개인적인 애착과 관심, 열망은 종전의 경계들-지역간 국가/민족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이 탈경계적인 정서의 공동체 안에서 발산되는 개인의 정서들이 국가를 넘나드는 거대한 미디어에 의해 재정의 될 수 있는 지점도 동시에 발생한다.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새로운 전지구적 문화 경제는 이제 더 이상 현존하는 중심-주변 모델들의 용어로는 이해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탈구(disjuncture)적인 질서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에스노스케이프(ethnoscapes), 미디어스케이프(mediascapes), 테크노스케이프(technoscapes), 파이낸스케이프(financescapes), 이데오스케이프(ideoscapes)등을 전지구적 문화흐름의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특히 미디어스케이프는 정보들을 생산하고 퍼뜨릴 수 있는 전자적 장치들의 배분(신문, 잡지, 텔레비전, 영화)과 이런 미디어에 의해 생산된 세계의 이미지들 모두에 관계되어 있다. 전자적 장치들은 오늘날 사적/공적 이익단위들에 의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에는 복합적인 변형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양식과 하드웨어와 청중(지역적, 민족적인가 아니면 초국가적인가)에, 그리고 매체를 조종하는 자들의 이해에 의존한다. 미디어스케이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특히 텔레비전, 영화 그리고 카세트 형식으로) 특유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에스노스케이프의 목록들을 담고 있는 거대한 레퍼토리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 세계 많은 청중들이 매체 그 자체를 인쇄와 영화, 전자화면 그리고 빌보드의 복합적이고 상호 연관된 레퍼토리로 경험한다는 것을 뜻한다. 현실적인 풍경과 허구적인 풍경 사이에 존재하는 선이 점점 희미해지고 그에 따라 대중들은 대도시 삶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멀어질수록 공상적이고 미적인 세계를 상상 속에서 구성해내게 되고 이는 상이한 시각, 즉 상이한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환상적인 사물들로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재편되는 세계상(像)을 볼 수 있으며, 이는 또 하나의 보편 기준에 동일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지점이 이데오스케이프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작용과 효과에 대한 논의에서 홀(S. Hall)은 미디어는 이데올로기적 권력이며, 사건들에 대한 특정한 방식으로 의미작용할 수 있는 권력이라고 했다. 이때 미디어는 단순한 현실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모습으로 정의한다. 즉 미디어를 단순한 기술적 매개로서 파악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매체는 ‘매개’도구가 아니라 ‘형성’도구라고 보는 것이다. 미디어스케이프들은 그것들을 경험하고 변형시킬 사람들에게 일련의 구성요소들(성격들, 플롯들, 텍스트 형식들)을 제공하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들로부터 그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상된 삶에 대해서도 서술하는 대본들을 만들어낸다.

아파두라이가 제시하는 미디어스케이프의 출발은 글로벌 질서 하에서 진행되는 ‘초국적’이동에 초점이 있었다. 국민국가의 경계를 유동하는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탈구적 양상을 포착하고 이들이 생산해 내는 이미지들이 경계를 해체한다고 포착하면서도 한편으로 미디어에 의해 구조화된 세계의 상象을 놓치지 않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미디어스케이프가 작동하는 이중의 계기성을 주목하여 지역이 탈/구축을 고찰해 보았다. 다시말해서,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지역의 이미지들이 차이를 어떻게 봉합시키면서 동질성을 구축하는가, 여기에 대한 반동일화의 실천들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을 다룬 영화가 창출하는 미디어스케이프를 보았다. 영화는 산업과 테크놀로지와 의식/무의식이라는 범주가 교차하면서 이미지와 서사의 복합체를 조직해내는, 예술 형식인 동시에 대중문화 매체이며, 독자적인 언어구조를 가진 사회 담론의 장(場)이다. 이러한 영화는 이제 단순히 오락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제도가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사회를 반영함과 동시에 형성한다. 이때 영화는 직접적인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 경험으로 지각되기 때문에 다른 매체들보다 이미지나 상상력의 확장에 훨씬 더 파급적 효과를 생산한다.

1990년 말부터 한국 영화에서 부산을 영화적 공간으로 선택하는 경우-(일반적으로 이러한 범주를 ‘부산영화’라고 명명한다. 부산영화의 범주와 개념에 대한 논의는 이미 ‘지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의만큼 복잡한 층위를 지니고 있다. 주체로 접근할 것인가, 수용자 측면에서 접근할 것인가, 부산이라는 지역으로 접근할 것인가, 소재나 주제 등 내용적인 면으로 접근할 것인가 등등, 대략적으로 논의를 압축시켜 보면 다음과 같다. 1)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 2)부산성을 드러낸 영화 3)부산에서 찍은 영화 등 그 정의는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3)부산에서 찍은 영화의 경우, 내용과는 무관하게 부산에서 올로케이션하고 있는 영화들까지도 포함한다. 이것을 부산영화라고 할 것인가. 2)의 경우는 부산성에 대한 전제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의가 범하고 있는 오류 중 대표적인 것이 ‘부산성이 무엇이다’ 라는 선험적 전제에서 출발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 논의에서는 ‘부산영화’에 대한 규정은 보류하고, 다만 부산을 영화의 서사적 공간으로 차용하고 있는 영화에 한정하기로 한다.)-가 많아졌다. 이러한 영화들을 일차적으로 인상비평의 차원에서 볼 때, 정형화된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범죄도시 부산(<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사랑>, <사생결단>, <마린보이>, <무적자>, <범죄와의 전쟁>, <마이뉴파트너>, <우아한 세계>, <부산>, <푸른소금> 등)의 이미지가 강한 것은 분명하다. 최근들어 남성조폭들의 세계를 비집고 ‘억척어멈’의 계보가 형성되기 시작하고(<우리형>, <애자>, <봄, 눈>), 야구도시 부산의 이미지가 끼어들기도 한다.(<불편한 상견례>, <마이뉴파트너>, <해운대>, <퍼펙트게임>) 또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해운대>는 공간지리적으로 ‘부산’을 강하게 매개하면서 세계적인 재난현장의 이미지를 생산했다.

이는 영화 해운대의 스케일이 글로벌적이라도 해도 범죄도시 부산의 효과로 생산되는 위험과 공포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효과를 야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유사반복적인 영화적 관습이 지속될수록 로컬리티의 다층적 주체들은 타자화되고 모든 사건들이 지니는 고유한 성격들은 약화되고 등가적이고 동질적인 기호가 된다.


● 참조한 문헌
아르준 아파두라이. 2004. 차원현· 채호석 역. <고삐풀린 현대성>. 현실문화연구.
임영호 편역. 1996.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 한나래.
로빈 우두간. 1995. 이순진 역.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할리우드 영화 읽기: 성의 정치학>. 시각과 언어.
배영달. 2005.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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