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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워킹맘의 현실을 우롱한

SBS '워킹맘'

SBS 수목극 <워킹맘>(극본 김현희, 연출 오종록)은 방영 초기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다. “만들 땐 둘이고, 키울 땐 혼자”인 대한민국 육아의 처절한 불평등의 묘사는 리얼했다. 시어머니는 한없이 당당하고, 딸네 집에 함께 사는 홀로된 친정아버지는 ‘거실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며 놀이터 벤치를 지키는 대한민국 결혼의 여전한 양면성도 놓치지 않았다. 일하러 가는 엄마의 번거롭고 피곤한 일상과 서글픈 모정은 시대의 초상이었다. 구조적인 개선 없이는 조만간 모든 가정이 사단 날 육아전쟁 시대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워킹맘>은 궤도를 이탈했다. 본말전도가 점입가경이더니 마지막회는 열패감까지 주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이었다. 스토리도 엉망이지만, 주인공 가영(염정아 분)은 왜 중요한 고비마다 임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첫 애가 ‘월드컵베이비’였다는 설정은 애교로 봐준다 치자. 백 번 양보해도 그녀는 ‘똑똑한’ 여자일 수 없다. 매사에 주도면밀하다는 가영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건 지난 반세기의 페미니즘에 대한 모독이다.

여전히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이전의 ‘피임’을 모르던 19세기 여성을 보는 기분이다. ‘생명’은 소중하다는 논리도 낄 자리가 없다. 그녀의 아이들은 원해서 얻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엄마를 망친 ‘웬수’들이었다. ‘사랑’으로 태교했을 리 없다. 있는 상식도 활용 못해 남들이 다 아는 생활의 지혜’도 못 누리는 그녀가 성공적인 워킹맘이 될 리 없다.

연하 남편이자 평면적인 ‘나쁜 놈’으로 나오는 한심한 봉태규의 모습도 비현실의 극치다. 무엇보다 <워킹맘>의 심각한 잘못은 ‘친정엄마가 봉’이라는 그 주제의식에 있다. 친정엄마를 무보수로 손자들 키워주는 사람으로 ‘각인’시키려 하는, 심지어 워킹맘의 ‘친정엄마 만들기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재혼과 육아의 희화화다. 한 여자가 ‘일’을 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다른 여자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이 구조적이고 악질적인 모순에 대한 각성은 외면당했다.

세상에 의붓딸의 베이비시터가 돼 주기 위해 재혼하는 여자란 없다. 말도 안 되는 설정과 내용을 왕년의 공주였고 그 나이에도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배우 김자옥의 연기력으로 커버 중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남자다운 매력을 뽐내는 가영부 윤주상과 함께 이 부부의 남성미·여성미가 애써 극을 봉합했다.

친정 엄마 덕에 ‘페미니스트 잡지 편집장이며 여성학자’인 본업에 충실한 시누이는 페미니즘 자체를 조롱거리로 만든다. 드라마 <워킹맘>은 그렇게 여자들을 이간질하고 이분화 시켰다. 최가영이 바라는 방식의 ‘친정 엄마’야말로 시누이의 친정 엄마이며 자신의 시어머니인 전형적인 무식한 ‘팥쥐엄마’ 안흥분 여사(김지영 분)이기 때문이다. ‘워킹맘’은 대한민국에선 여전히 특출한 원더우먼이나 강박적인 히스테리 환자로 그려진다. 이러니 누가 감히 애를 낳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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